우한 코로나(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조짐이 확산하는 데다 국제 유가까지 급락하면서 9일 글로벌 증시가 크게 떨어졌다. 아시아에서 코로나 충격이 가장 큰 한·중·일 3국에서 9일 감소한 시가총액(홍콩 포함)은 615조40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하루 만에 증발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산세를 감안할 때 세계 증시는 당분간 하락세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경기 침체 우려감도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시아 증시 패닉… 호주·태국도 7%대 급락

시장의 투자 심리가 꺾인 출발점은 유가 급락이었다. 지난 6일 주요 산유국 연합체의 원유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유가가 10%가량 떨어지자 투자자들은 주말을 불안감 속에 보내야 했다. 이번 주 시장이 열리면 유가 하락 폭이 커지며 시장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할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9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30% 넘게 폭락하며 4년여 만에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무너지자 코로나 공포감에 떨던 투자자들은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폭증한 것이다.

무너진 유럽증시… 심각한 독일 트레이더 - 우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병)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9일(현지 시각) 유럽 증시는 6~8% 큰 폭의 하락세로 출발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트레이더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가 화면을 보고 있다.

아시아 증시가 대부분 3% 이상 폭락한 가운데 일본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이날 닛케이 지수는 5.07% 하락한 1만9698.76에 마감했는데 2018년 12월 이후 1년 3개월여 만에 낙폭이 가장 컸다. 이날 코스피는 4.19% 하락한 1954.77에 마감했다. 지난 2018년 10월 11일(-4.44%) 이후 1년 5개월 만의 최대 낙폭이었다. 코스피 폭락을 주도한 것은 외국인이었다. 이날 외국인은 사상 최대인 1조312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3.01%, 홍콩 항셍지수 -4.23%, 대만 가권지수 -3.04% 등 중화권 증시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호주(ASX200)와 태국(SET50) 증시 대표 지수도 이날 7%대 급락세를 보였다.

◇유럽·미국 증시도 대폭락

한국 시각으로 이날 오후 개장한 유럽 증시의 하락 폭은 아시아보다 컸다. 영국 런던 증시에선 개장하자마자 투자자들이 주식을 던지면서 FTSE 지수가 장중 8.7% 하락했다. FTSE 지수는 개장 초반 6000선이 무너졌는데,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예상 밖으로 가결된 2016년 6월 이후 3년 9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날"이라고 했고, 일간 가디언은 "1987년 '블랙 먼데이'에 비견될 만큼 역사에 남을 폭락의 아침"이라고 했다. 독일 DAX 지수도 개장 직후 8.1% 급락했고, 프랑스 CAC40 지수 역시 장중 7.4% 하락했다. 유럽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의 FTSE MIB 지수는 장중 11%까지 폭락했다. 10일 0시 현재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증시는 각각 6.63%, 6.88%, 7.08%, 9.99% 하락했고,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은 7.07% 하락했다. 미국 뉴욕 증시는 이날 개장 직후 폭락세를 보이면서 주식 거래가 일시 중지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10일 0시 현재 다우존스와 S&P500, 나스닥 지수는 각각 6.40%, 5.53%, 5.78% 하락했다.

◇"금융 위기 때보다 충격 더 클 수도"

이날 증시 폭락 사태를 일으킨 코로나 팬데믹과 유가 폭락 등 두 가지 리스크는 조기 진화(鎭火)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짧은 시간 내에 반등을 이뤄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견했던 비관론자 앤디 셰(Andy Xie)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코로나 위기가 여름까지 이어지면 충격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경고는 '과도한 우려'로 치부됐지만, '최악'을 대비하라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요아힘 펠스 글로벌 수석경제고문은 최근 "향후 몇 개월간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 경제가 경기 침체를 겪을 명백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글로벌 인사이트' 보고서에서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악화하는 최악의 경우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0.1%에 그치고, 미국과 일본, 유로존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BI는 "팬데믹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선 우리가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도 낙관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