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6일(현지 시각)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에서 "아시아에서 몇 주간 겪은 일이 유럽과 미주 지역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코로나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AI 자회사 '딥마인드'의 의료용 AI '알파폴드'를 코로나와의 전쟁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딥마인드는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다. 구글은 AI로 우한 코로나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SARS-CoV-2'의 단백질 구조를 파악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사람 세포에 침투하는 바이러스의 돌기 부분의 단백질 구조만 파악하면,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저사람 열나네, 척 보면 아는 로보캅 - 중국 청두 번화가에서 스마트 헬멧을 쓴 경찰들이 순찰 중이다(왼쪽). 중국 '광치테크'가 개발한 스마트 헬멧은 열화상 카메라(흰 원)가 탑재돼 있어 5m 밖 행인의 체온을 체크할 수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행인의 체온이 표시된 헬멧 내부 스크린의 모습.
마스크 안쓴사람 골라낸다, 거리 곳곳에 순찰 로봇 - 지난 6일 중국 선전시에서 순찰 로봇이 순찰을 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골라내고, 실시간 체온을 측정한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확산하면서 AI·빅데이터·로봇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한 코로나 사태가 미·중과 한국 간 첨단 기술 격차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美, 코로나 퇴치에 AI·빅데이터 활용

AI 세계 1위 미국은 우한 코로나 퇴치를 위해 의료 AI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미국 제약 회사 인실리코 메디슨은 최근 우한 코로나 백신 개발 촉진을 위해 우한 코로나 퇴치에 도움이 될 만한 수백 가지 화합물의 분자 구조에 대한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AI를 통해 수천 개 분자를 분석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적합한 분자 구조를 추려낸 것이다. 분자 구조 분석에는 고작 4일이 걸렸다.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인 비르 테크놀로지도 AI를 통해 화학 데이터를 분석하고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의료진 감염 막아요, 약 전달 로봇 - 중국 로봇 개발업체 '뤼상테크'가 개발한 병원 로봇. 카메라로 환자 얼굴을 인식해 처방 약품을 전달한다(왼쪽). 구글이 만든 의료용 AI 알파폴드 -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의료용 AI '알파폴드'가 바이러스 성질을 분석하는 모습.
코로나로 드러난 세계 IT 실력 - 지난 6일 중국 시안 의료기기 개발 업체 '중커촹싱' 직원이 환자의 혈관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적외선 혈관 탐지 기계를 작동하고 있다. 이 기계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의료진이 환자의 혈관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중커촹싱은 중국 전역 병원에 혈관 탐지 기계 100여대를 기증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염병 확산 경로를 예측하는 서비스도 나왔다.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SAS는 미국 식품의약국·질병통제예방센터·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와 협력하며 우한 코로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현지 환자의 상세 정보와 의류 물자 사용 현황, 해외 확산 사례 데이터를 모아 예상 확진자 수와 확산 추세를 계산해내는 것이다. 스티브 베넷 SAS 이사는 "기계 학습 기술을 통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검토하고 규칙을 찾아낸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데이터까지 수집하고 분석해 지역별로 의료 도움이 필요한 규모와 현황을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순찰·간호 로봇 내놔

중국 병원에서는 의료진과 환자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주는 로봇들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 로봇 개발 업체인 뤼상테크는 선양(瀋陽)시 적십자회와 제4인민병원에 의료용 순찰 로봇 '서우왕저(守望者·파수꾼)'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로봇은 카메라로 환자 얼굴을 인식해 의사가 처방한 약품을 전달한다. 체온과 혈압 같은 간단한 신체검사도 체크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능이 있어 병원 안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소독까지 한다.

행인의 체온을 열화상 카메라로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스마트 헬멧'도 나왔다. 지난 5일 중국 청두(成都)시 번화가 춘시루(春熙路) 입구에서 경찰관이 검은색 헬멧을 쓰고 행인 중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중국 군사·AI업체 광치테크가 개발한 이 헬멧 좌측엔 열화상 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이 헬멧은 최대 5m 밖 행인 체온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스크린에 결과를 띄운다. 체온이 37.3도 이상인 사람이 나타나면 헬멧은 곧바로 경보를 울리고, 안면인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무인 식당 등 '언택트(비대면)' 기술 활용도 높아졌다. 지난달 13일 우한에는 중국 부동산 업체 컨트리가든이 내놓은 무인 로봇 식당이 설치됐다. 사람이 재료를 미리 준비해놓으면 15분 안에 36인분의 덮밥요리를 만들어낸다. 바이두의 자율주행 미니 버스 '아폴로'는 원래 관광지 셔틀버스로 활용됐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지난 2일 베이징 중관춘 단지 안 56개 기업에 '언택트 도시락 배송' 서비스를 한다. 알리바바는 지난 2일 환자의 폐 CT 사진을 분석하고, 20초 만에 코로나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AI 진료 시스템을 내놨다. 코로나 환자의 폐 CT를 학습한 AI가 진단 속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코로나에 손 놓은 한국 테크

한국은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한 달째 급증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이 현장에 투입된 경우는 드물다. 일부 지역에서 드론을 이용해 자가 방역을 하고, 커피 프랜차이즈가 운영하는 무인 로봇 카페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정도다.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動線)을 정리해주고, 마스크 재고를 알려주는 앱도 대학생 등 민간인이 만들어 배포하는 실정이다.

정옥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국내는 기술 연구는 해외 못지않게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규제가 많아서 실용 사례가 적다"며 "우한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에서 기술을 '무기'로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격진료도 카풀도 타다도… 한국선 왜이리 힘든가]

IT 강국인 한국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 로봇·AI와 같은 혁신 기술이 도입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네거티브 규제'로 일단 허가해준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규제로 기술이 사장(死藏)되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원격진료다. 화상 통화나 AI가 병을 진단해주는 것이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우한 코로나 확산으로 정부는 전화진료를 한시 허용하기로 했지만, 일선 병원 참여율이 저조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4~5년 전부터 원격 진료를 확대해온 미국·중국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2014년 전체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진료로 이뤄지고 있었고, 올해엔 코로나 영향으로 원격진료 건수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1월 말 우한 코로나가 확산하자 곧바로 알리바바·웨이보·딩샹닥터·핑안닥터 등 업체들이 '시민 무료 원격진료' 서비스를 선보이며 감염 확산 방지에 나섰다.

카풀과 같은 모빌리티 신산업도 국내에선 사업이 불가하다. 택시 업계의 반대로 지난해 초 정부는 카풀을 하루 출퇴근 4시간만 허용하기로 결정했고, 대표 카풀 업체인 카카오모빌리티풀러스 등은 카풀 사업을 포기했다. 지난 6일에는 승합차 공유 서비스인 '타다'를 불법화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타다 서비스도 곧 중단된다. 중국의 대표 승차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지난 2월 초 카풀 드라이버로 구성된 '의료인 전문 수송팀'을 구성했다. 도시 봉쇄로 대중교통과 택시가 모두 끊긴 우한시에서 무료로 의료진의 귀가와 출근을 도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