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감염증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강(强)보합세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전자제품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소비 시장의 침체에도 D램 메모리와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한 제품으로, 원칙대로라면 스마트폰이나 PC와 같은 전자제품의 판매량이 꺾이면 가파르게 추락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8일 시장조사 업체인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기가비트의 고정 거래 가격은 1월과 2월에 연속으로 전월보다 가격이 각각 1.07%, 1.41% 올랐다. 고정 거래가는 화웨이, 레노버, 구글 같은 기업 고객이 대량 구매하는 가격이다. 소량으로 매일 거래되는 현물 가격도 오름세다. D램 현물 가격은 5일 3.563달러(4344원)를 기록해 지난 1월 2일(3.03달러)보다 17% 상승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도 비슷하다. 작년 6월에 바닥을 다진 낸드 플래시(128기가비트 기준)의 고정 거래 가격은 올 1월 3.17% 껑충 뛰었고 2월에도 전월과 같은 가격을 유지했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의 2월 반도체 수출액은 예상을 뒤엎고 전년보다 9.4%가 늘었다. 반도체 수출액은 줄곧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감소하다가 15개월 만에 깜짝 상승세로 반전했다.

◇코로나의 3가지 역설

반도체 전문가 사이에서는 '코로나의 3가지 역설(逆說)'이 단기 가격 강세의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한 코로나 사태에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서울 삼성딜라이트에서 외국인들이 삼성전자가 생산한 반도체 제품을 바라보는 모습.

역설의 1번은 우한 코로나 확산 탓에 한 달 뒤 반도체 가격도 전혀 예측 못 하는 상황이 오히려 강보합세를 뒷받침한다는 해석이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보니 일정량 재고는 미리 확보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추후 반도체 가격 급등을 우려한 제조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물량을 비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공장의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구매자들에겐 불안 요소다. 주요 메모리 반도체 제조공장 한 곳이라도 가동 중단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량은 급감한다. 7년 전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공장이 화재가 나 일부 라인이 가동을 멈췄을 때 D램 가격이 40% 이상 폭등한 사례가 있다.

우한 코로나 확산이 촉발한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의 도입도 역설의 근거다. 우리나라만 해도 KT·SK텔레콤·네이버 등 주요 기업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이런 현상은 중국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재택근무·온라인교육은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때 엄청난 양의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들이 클라우드 시장의 큰손 투자자였지만, 앞으로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들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장기 불황 땐 폭락 못 피해

우한 코로나 사태 이후의 빠른 경기 회복 기대감도 있다. 인위적으로 소비가 장기간 억눌린 만큼, 사태 종식과 함께 엄청난 소비 증가가 터져나올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다. 중국 경제학자인 우샤오보씨는 최근 "7~8월쯤 중국에서 '보복적 소비'가 경기 회복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현실화해 세계경제의 불황이 닥치면 반도체 시장이 끝까지 버티긴 힘들다. 반도체는 스마트폰·노트북과 같은 완제품에 쓰이는 부품인 만큼, 완제품 시장이 장기간 쪼그라들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작년보다 10%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트북의 경우 지난달 출하량이 전년보다 20% 줄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