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14조8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개인투자자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수 주체는 크게 개인, 외국인, 기관으로 구분되는데 개인의 순매수가 늘었다는 것은 외국인 등이 주식을 많이 팔았다는 뜻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은 증시에는 부정적인 지표로 인식된다. 실제 개인 순매수가 강하게 나타날 때마다 지수는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소 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개인의 ‘총알(여유자금)’이 충분하다. CMA통장 대기자금과 고객 예탁금이 대량 순매수에도 도리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최근 개인 투자자들이 대형 우량주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개인투자자들이 조(兆)단위로 순매수했던 때는 2015년 바이오주 랠리, 2018년 6월 대북주 랠리 등 두차례다.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삼성전자(005930)등 우량주 위주로 접근하고 있어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라앉으면 개인 투자자가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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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투자금·부동산 자금, 증시로 넘어온 듯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개인은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6601억원, 코스닥시장에서 3조1924원을 사들였다. 두 시장을 합치면 14조8525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증시 시황에서 언급됐던 1월 23일 이후로 따지면 각각 9조7402억원, 2조44억원을 순매수했다. 연초 후 짧은 기간에 개인이 이렇게 많이 사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 증시는 돈이 모자라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 때문에 한 업종이 주목을 받으면 그전까지 잘 오르던 업종이 주저앉곤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최근엔 달라졌다. 증시 여유자금 또한 상당하다. 지난 4일 기준으로는 예탁금과 CMA 자금을 합친 규모가 84조원을 넘어섰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이는 최근 5년간 평균치보다 약 13조원 많은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먼저 이 자금의 출처를 궁금해하고 있다. 돈에 꼬리표가 없어 정확한 분석은 어렵지만, 일단 그동안 사모펀드로 쏠렸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연기 사태로 개인 큰손의 투자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사모펀드 자금이 고객예탁금으로 이체되는 상황이 자주 관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투자자금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로 이미 매도한 부동산 자금 중 일부를 주식시장에 넣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해 말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올 즈음부터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억단위 자금으로 삼성전자를 매수해달라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올해 들어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 누적 순매수는 약 4조4200억원으로 전체 유가증권시장 매수 금액의 40%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 대형주 순매수 규모는 8조7000억원으로, 최근 유입되는 개인은 대부분 우량주를 순매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은 삼성전자 외에 코덱스 레버리지, SK하이닉스(000660), 한국전력(015760), 신한지주(055550)등을 순매수 중이다.

올해 들어 개인 누적 순매수 상위 종목. 순매수 금액은 백만원 단위임.

◇여유자금 충분하고 대형주 위주로 순매수… 과거와는 다르다

추가 투자 자금이 충분하다는 것과 우량주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개인의 순매수와 지수의 상관관계는 역에 가까웠다(개인이 살수록 지수는 떨어진다는 의미)"면서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상승 반전하고 있으며, 이는 눈여겨 볼만한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또한 "개인이 외국인과 기관의 매물을 소화하면서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줄어 증시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면 개인은 차익 실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가지 문제는 대주주 양도세 과세다. 올해 말부터는 주식 보유액이 직계존비속을 합쳐 3억원이 넘으면 이익의 최대 25%를 양도세로 납부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개인의 순매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들이 연말에 한꺼번에 매도할 경우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 증시는 구조적으로 외국인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큰 폭의 상승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