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2010년 3월 출시부터 10년 변천사
우여곡절 있었지만 이제는 카카오 최대 수익사업
국민 메신저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한국에서 ‘필수템’이 된 메신저 카카오톡은 2010년 3월 18일 탄생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2006년 벤처기업 아이위랩을 세우고서 4년만에 내놓은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통신사 유료 문자메시지가 당연하던 시절 등장한 '무료 문자' 카톡은 문화 충격이었고, 국내 이용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카톡은 출시 6개월만에 가입자 100만명, 1년만에 1000만명을 넘어서며 국내 메신저 시장을 석권했다. 이때 아이위랩의 이름도 카카오로 바뀌었다.

김 의장은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모바일용 메신저 개발을 결심했다고 한다. 아이폰이 2007년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눈여겨 보며 모바일 시장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 전망했고, 2009년 11월 국내에도 아이폰이 나오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애플 기기에 설치하는 iOS용을 먼저 선보였고, 삼성전자가 갤럭시폰을 내놓으며 안드로이드용 카톡이 뒤이어 출시됐다.

카톡은 금세 국내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지만 당장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다는 게 한계였다. 이때 카톡 '게임하기' 서비스를 2012년 7월 론칭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카톡 사용자에게 모바일 게임을 소개하는 이 서비스는 애니팡, 모두의 마블 등 1000만 다운로드가 넘는 히트작을 배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카톡을 대체할 수 있는 게임 홍보 수단이 많아지고 비싼 수수료에 대한 업체들의 원성이 높아지며 카톡 게임은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

2014~2015년은 카톡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등 캐시카우였던 서비스들이 휘청거리고 2014년 말 사찰 논란까지 불거지며 대형 악재가 겹쳤다.

그래픽=송윤혜

당시 검찰과 경찰이 세월호 집회 등을 수사하면서 카톡 이용자들의 대화 기록을 들여다본 것으로 드러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텔레그램 등 검경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 메신저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이 유행처럼 번졌고 카톡 이용자 수는 급격히 줄었다. 이 일로 카카오가 수사기관의 감청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강수를 뒀지만 탈(脫)카카오 움직임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한때 5000만명을 넘던 카톡 월간활동사용자(MAU) 수는 4000만명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국민 메신저’ 카톡의 견고한 기반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카톡 이탈 현상은 점차 가라앉았고 어떤 메신저도 카톡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다. 카카오는 "수사에 차질을 준다"는 비판에 감청 불응 방침을 바꿔 현재는 압수 수색 시 서버에 저장된 2~3일치 대화 내용만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카톡 MAU는 4485만명, 하루 평균 송수신 메시지는 110억건이다. 카톡은 이제 국민 메신저를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쇼핑이나 선물하기, 결제, 송금 등이 카톡이라는 하나의 앱을 통해 모두 가능하다. 또 각 기업들의 상담 창구 등으로 활용되는 챗봇 서비스도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카톡 채널이 챗봇을 도입, 국민들에게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데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카톡 기반 사업인 ‘톡비즈니스’는 급성장하며 카카오의 최대 매출처가 됐다. 카카오는 지난해 1년 동안 카톡 선물하기, 광고 등 톡비즈에서만 약 6500억원의 매출을 거뒀고, 올해는 톡비즈 매출이 1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카톡 채팅목록에 뜨는 광고인 ‘톡보드’는 지난해 5월 출시 돼 반년 만에 하루 매출 5억원을 달성하는 등 톡비즈의 탄탄한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