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달성한 3만달러… 4년 만에 뒷걸음질
물가 반영한 명목 성장률 1.1%, 21년 만에 최저
코로나 여파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 1%대로 '뚝'

지난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GDP)은 2.0%를 기록, 가까스로 2%대에 턱걸이 했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수준이다. 그나마도 정부가 재정을 풀어 성장의 4분의 3(1.5%포인트)을 견인했다. 반도체 수출 단가 하락은 1인당 국민소득을 4년 만에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환율 상승의 영향도 작용했지만 원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의 상승폭도 외환위기 후 최소였다.

물가를 반영한 명목성장률이 1%대로 21년 만에 최저로 곤두박질 치면서 체감 경기수준은 더욱 악화됐다. 명목 성장률이 실질 성장률을 밑돌면서 경제 전반의 상황을 반영한 물가지표인 GDP디플레이터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를 감안한 성장세, 소득이 모두 후퇴한 셈이다. 올해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는 걷히지 않고 있다.

인천 부평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한 직원이 멈춰선 생산라인을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047달러다. 전년(3만3434달러)대비 4.1% 줄어든 수준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경제 전반이 악화됐던 2015년(-1.9%) 이후 4년 만의 감소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6년 2만달러를 처음 돌파한 이후 11년 만인 2017년(3만1734달러)에 3만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한 건 환율의 영향이 있었다.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5.9% 상승해 원화가 약세를 보인 탓이다. 하지만 원화를 기준으로 봐도 1인당 국민소득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원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3735만6000원으로 전년대비 1.5% 증가했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2.3%) 이후 증가폭이 가장 적었다.

한은은 명목 성장률 하락을 원인으로 들었다. 지난해 명목 성장률은 1.1%로 1998년(-0.9%) 이후 최저였다. 실질 성장률(2.0%) 보다도 한참을 밑도는 수준이다. 물가 상황을 반영한 명목성장률은 체감경기에 더 가까운 지표로, 통상 실질 성장률보다 높은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저물가 흐름으로 역전됐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둔화되고 반도체 단가가 하락한 여파다. 수출입 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특성상 대외 부분의 가격 하락요인이 물가를 반영한 명목 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 가격 보다 수출 가격이 떨어지게 되니 자연스레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다.

박성빈 한은 경제통계국 국민계정부장은 "작년 수출이 둔화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과 투자 여력이 악화됐다"며 "대외부분의 가격 하락 요인이 명목 성장률, 국민소득의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2일 오전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대구시 남구 신봉덕시장에서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명목 성장률의 하락은 '마이너스' GDP디플레이터로 이어졌다. 명목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격차를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상승률과 달리 모든 상품과 서비스, 수출, 수입 물가 추이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물가지표다. 지난해 GDP디플레이터는 -0.9%로 1999년(1.2%)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반도체 불황을 반영한 수출 디플레이터(-4.9%)의 역성장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GDP디플레이터는 분기별로도 2018년 4분기부터 작년 4분기까지 5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GDP디플레이터의 역성장은 지난해 내내 디플레이션(deflation)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돈을 풀어 가까스로 2%대 성장을 유지했지만 민간의 힘이 미약한 상황에서 교역조건까지 악화된 결과였다.

올초 수출의 하락폭이 다소 줄어들면서 반등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다시 한국 경제의 성장세는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커졌다. 발원지인 중국의 성장률이 올해 5%대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우리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전염병 확산으로 소비가 움츠러 드는 것 또한 성장의 하방요인이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려잡았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9%, 1.6%로 낮췄다. 피치그룹 산하의 컨설팅업체 피치솔루션스도 전망치를 2.2%에서 1.7%로 하향했다. 여기에 국제기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전날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0%로 낮춰 부정적인 전망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