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에 ‘한국 제조업 심장’ 산업단지 타격

경북의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산 원부자재 수입이 끊겨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원부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공장 가동이 어려운데, 지역사회 확진자가 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A사를 포함한 인근 사업장들은 혹시라도 직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조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경북 지역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국내 소재·부품·장비업체가 몰려있는 국가산업단지는 잇따른 공장 가동 중단과 매출 감소로 시름에 빠졌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중소업체들은 운영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연초만 해도 북적이던 대구와 구미의 음식점과 상점은 손님이 급격히 줄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경북 구미국가산업1단지 전경. 입구에 '수출산업의 탑'이 세워져 있다.

대구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3000명이 넘어서면서 제조와 소비 모두 직격탄을 맞았다. 대구 지역 제조사 중에는 기계·자동차 부품 회사가 많은데, 중국 의존도가 높아 원자재 수급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기준 대구지역 중국 의존도는 수출이 20.5%, 수입이 45.2%를 차지했다.

3일 대구 최대 산업공단인 성서공단은 대부분 기업이 공장을 가동 중이지만,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나 접촉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학교 개학이 또 연기 되면서 급식을 납품하는 식품업체 2~3곳이 휴무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구미 소재 제조사 가운데 중국에 공장을 둔 기업만 40여곳에 달하는데, 현재 중국 공장이 전부 멈춰선 상태라 업체들의 피해가 크다. 지난해 기준 구미지역의 중국 의존도는 수출이 35%, 수입이 15%에 달했다.

여기에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구미 국가산업단지 입주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2일 기준 삼성전자 구미 공장에서만 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앞서 LG이노텍과 LG디스플레이 구미 사업장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조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확진자 한명이 발생하면 2~3일간 공장을 못 돌리고 방역을 하기 때문에 일주일 가까이 생산 차질이 생긴다"며 "대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중소기업은 매출 감소폭이 더 크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는 엔진 제조사 STX엔진이 직원 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본사와 공장 문을 닫았다. STX엔진 측은 "방역 작업을 마치고 이달 1일부터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원전 부품사가 몰려있는 창원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창원 지역의 중국 수출 비중은 약 14%인데 최근 수출이 줄면서 제조사들의 매출이 감소했고, 이에 따른 운전 자금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개별 기업의 마스크 확보도 어려운 실정이다. 창원의 한 중기계 업체 B사는 "직원들에게 매일 새로운 마스크를 지급하지 못해 기존에 쓰던 마스크를 세탁해서 건조기에 말려 재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도 최근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울산미포산단 내 입주업체들이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제 한파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3일 발표한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중 대구의 제조업 업황 BSI는 전달보다 20포인트(p) 급락한 35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염병 확산으로 기업의 체감 경기가 급속도로 위축된 것이다.

대구를 포함한 대구·경북지역의 제조업 업황 BSI는 53으로, 전달보다 7포인트p 하락했다. 이는 세계 경기가 둔화됐던 2016년 2월(53)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한은의 조사가 지난달 24일 마감돼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이 조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지표가 크게 하락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정문 모습.

코로나19 확산으로 식당과 상점을 찾는 발길이 끊기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자영업자 매출도 급감했다. 대구의 C철물상점 대표는 "장사가 안돼 최근 일주일간 문을 닫고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렸지만 사태가 더 악화됐다"며 "인건비와 임대료는 계속 나가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발표한 대구·경북 소비자심리지수도 떨어졌다. 2월중 소비자심리지수는 92.8로 전월보다 4.8p 내렸다.

조태진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경제조사팀장은 "음식점의 경우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영업하는 곳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며 "소비가 위축돼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