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상무랑 펭 상무 중에 누가 먼저 전무로 승진할까."

최근 유통업계에서 도는 이야기다. '펭 상무'는 EBS(한국교육방송공사) 방송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하는 인기 캐릭터 '펭수'를, '라 상무'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으로 친숙한 카카오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라이언'을 뜻한다. 두 캐릭터와 제휴를 맺은 상품이 식품·의류 등 여러 업계에서 불티나게 팔리며 매출 효자 노릇을 하자 '웬만한 영업 담당 상무보다 물건을 잘 판다'는 뜻에서 상무란 호칭이 붙었다.

NH농협카드와 제휴 맺은 카카오프렌즈 '라이언'(왼쪽), 빙그레 붕어싸만코와 제휴 맺은 EBS '펭수'

과거 아이들 대상 마케팅으로만 주로 활용되던 캐릭터들이 성인용 제품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전에 캐릭터를 선호하는 성인 소비층은 일부 '키덜트(아이 취향을 가진 성인)족'에 국한됐지만, 최근엔 평범한 성인으로 크게 확대됐다. 성인용 의류부터 세제, 체크카드까지 두 상무 모시기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라이언 위협하는 펭수

카드업계와 편의점은 두 인기 캐릭터가 경쟁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NH농협카드는 작년 11월 농부 복장을 한 라이언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 '라이언 치즈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카드 디자인만 바꿨을 뿐이지만, 이 카드는 출시 3주 만에 10만장 넘게 발급됐다. 라이언의 인기를 지켜보던 KB국민카드는 지난달 펭수 디자인을 적용한 '펭수 노리 체크카드'를 선보였다. 펭수 인기는 더 뜨거웠다. 출시 4일 만에 10만장을 돌파했다.

편의점 GS25는 양치세트와 스무디 등 23종 라이언 제휴 상품을 판매 중인데 이 중 17가지 제품이 해당 카테고리 내에서 매출 5순위 안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올해 새롭게 컬래버한 펭수 제품들이 라이언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며 "지난달 밸런타인 데이를 위해 준비한 펭수 선물세트 8만개는 출시 10일 만에 완판될 정도"라고 말했다.

삼양식품 '호치', 맘스터치 '대맘이', 이마트 '샤이릴라'

카드업계까지 나서 캐릭터 제품을 선보이는 이유는 캐릭터 상품이 더 이상 아이들이나 키덜트들만의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작년 12월 발표한 방송·연예 분야 '2019 올해의 인물' 1위는 펭수(득표율 20.9%)였다. 이런 경향 때문에 일상에서 쓰이는 각종 범용 제품들도 인기 캐릭터와 제휴를 맺고 있다. LG생활건강이 지난달 12일 출시한 펭수 디자인이 추가된 섬유유연제 '샤프란 아우라 펭수 에디션'이 대표적이다.

패션 브랜드들도 캐릭터 디자인을 넣은 성인용 옷들을 쏟아내고 있다. 스포츠 패션브랜드 나이키는 작년 8월 카카오IX와 제휴를 맺고 라이언 디자인이 추가된 러닝용 티셔츠와 물통 등 운동 제품들을 선보여 하루 만에 모두 판매했다. 이랜드월드의 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 역시 지난 1월부터 '2020 펭수옷장'이라는 주제로 펭수 캐릭터가 들어간 성인용 티셔츠와 잠옷, 스웨터를 선보이며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매년 줄고 있지만, 캐릭터 산업 시장은 더 커지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출생아 수는 2010년 47만명에서 2018년 32만명까지 줄었지만, 같은 기간 캐릭터 산업 매출액은 5조8969억원에서 12조286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캐릭터 매장 세우고 자체 캐릭터 개발

캐릭터 제품의 인기가 커지자 대형마트나 백화점도 캐릭터 전문매장을 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달 17일 서울 구로점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포켓몬스터' 캐릭터 상품들로 매장을 꾸민 '캐릭터 전문숍'을 열었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전체 완구 매출 중 어른용 완구 매출 구성비는 2017년 10.2%에서 2018년 14.1%, 2019년 16.3%로 계속 늘고 있다. 이마트 역시 작년 12월 서울 왕십리점에 자사 캐릭터 상품을 한데 모은 전문매장 '샤이릴라 스토어' 1호점을 열었다.

일부 업체는 자체 캐릭터 개발에 나섰다. 햄버거 체인 맘스터치를 운영하는 해마로푸드서비스는 최근 직접 만든 브랜드 캐릭터 '대맘이'를 소개하며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불닭볶음면' 인기에 힘입은 삼양식품 역시 입에서 불을 뿜는 닭 캐릭터 '호치'를 개발해 관련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