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 '뒷북 대응' 질책받아… '물가 관리' 기재부가 총괄 조정 역할
리더십 부족에 우왕좌왕… "마스크 '공공물자'로 지정·관리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7일 마스크 대란에 대해 "송구하다"면서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난 2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를 마치고 "마스크 문제는 국민 체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질책을 받았다.

지난 1일에도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홍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코로나19(우한 폐렴) 확산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심해진 것과 관련, "모든 대책을 강구하라"며 사실상의 질책을 들었다. 홍 부총리가 일주일 사이 두 차례 대통령 질책을 받은 것은 정부가 마스크 수급 관리에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국민들이 서너 시간씩 줄을 서는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는데도, 정부는 ‘뒷북 대응’으로 일관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홍 부총리가 마스크 공급 문제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수 차례 질책을 듣게 된 배경으로 부실한 재난물자 관리 체계를 지목하고 있다. 방진용 마스크 등 재난 물자를 관리하는 체계에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마스크 대란을 일으킨 배경이라는 얘기다. 정부의 부실한 재난 물자 관리 체계가 마스크를 사기 위해 국민들이 서너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한정판매한 마스크가 소진되자 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현재 KF94 등 황사용 방진 마스크는 안전 인증 문제 등 의약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식약처가 수급 관리를 하는 주무부처다. 따라서 식약처는 지난달 6일부터 마스크 매점매석 등을 단속하는 정부합동단속반을 지휘하는 등 마스크 허가·신고·수출입 등에 대해 ‘지휘 부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차관급인 식약처장이 이끄는 소규모 부처 특성상 마스크 수급관리를 종합적으로 다루기에는 가용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다. 식약처는 마스크 관련 인허가·수출입 등 업무를 맡고 있지만 유통 체계 등에 대해서 상시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고, 공적 물량 등을 배분할 권리도 없다. 무엇보다도 식약처가 전면에 나서 장관급인 다른 부처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 할 수 없었다. 마스크 생산업자들에게 공공 계약 물량 공급을 위해 기존 계약을 파기하는 대신 지급할 위약금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에 경제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총괄부처 개념으로 마스크 관련 대응책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근거 법령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이다. 재난 물자 수급 관리에 물가 안정법이 동원되는 이유는 법령 포함된 ‘매점매석 고시 권한’ 때문이다.

물가안정법에 따르면 기재부 장관은 물가를 심각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인위적인 매점매석이 일어날 경우 고시 등을 통해 이를 금지하고 처벌을 위한 고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기재부는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매점매석 금지 품목으로 고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재부가 마스크 수급 대책의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매점매석 고시가 포함된 물가안정법의 소관 부처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재부는 마스크 유통 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KF94 등 방진 마스크가 주목을 받은 것은 미세먼지 문제가 주목을 받은 최근 3~4년 전 부터다. 봄철 한 번 사용하는 품목이라는 인식이 강해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당연히 기재부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품목이었다. 수급 문제에 대한 주무부처가 아닌만큼 기재부가 마스크 관련 전체적인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마스크가 생활 필수품이 된 상황에서 생산, 유통 등 수급 문제를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애초부터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현 상황과 같은 비상시 마스크와 같은 재난 물자 수급과 관련한 마땅한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이다.

상황을 주도할 ‘리더십’이 부재하니 다른 부처들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관세청이나 공정위 등은 주무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마스크 관련한 권한이 없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인터넷 오픈마켓 등 위반 사례에 관해 전자상거래법 위반 여부 등을 단속하는 데 그쳤다. 국세청도 품귀현상이 심해지자 지난달 말 뒤늦게 관련 세무조사에 나섰다. 여론을 의식한 산발적인 대응과 단속뿐, 실효성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실천하는 곳이 없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마스크 수급 안정 긴급 합동브리핑'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홍 부총리, 이의경 식약처장.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지난달 마스크 수출량이 평소 대비 200배가량 증가하는 등 문제가 심각했지만 식약처는 신고만 하면 수출이 가능하게 방치하다 지난달 26일에서야 뒤늦게 수출을 제한했다. 판단도, 대응도 너무 느렸던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뒷북 대응 지적에 "갑작스러운 확증세를 예상하지 못했고, 2월 중순까지는 마스크 수급 상황이 괜찮았기 때문에 수출을 제한하지 않았다"면서 "현재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부터 공적 물량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수출을 제한하는 등 강력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적판매처에서 판매하는 1인당 ‘5장’을 얻으려고 세 네시간씩 줄을 서는 촌극이 벌어지고, 우체국과 농협등으로 판매처가 제한되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이마저도 구하기가 어렵다. 실제 마스크가 가장 필요한 노약자 등이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이다.

예방의학 학계 등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사태 발생초기부터 마스크 재난물품 관리 등 강력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난상황을 대비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만 등 해외처럼 사태가 벌어질 때 바로 수출을 전량 제한하고, 벌금을 강화하는 등 마스크를 ‘공공품’으로 관리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등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어 향후 정부가 마스크를 공공물자로 관리하는 등 적극대응해야할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