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골 세계 경제에 덩치 커진 중국발(發) 충격이 가해져 올해 세계가 불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월가의 불길한 예언가'로 유명한 스티븐 로치 미 예일대 교수는 우한 코로나(코로나 19)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침체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중동·미국 등에서도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충격이 세계 경제를 강타할 것이라는 우려가 석학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등 일부 기관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2.8%까지 떨어져,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0.1%)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경제 침체 공포가 현실이 될 것이란 걱정에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대거 떠나고 있다. 지난 한 주간 미국 다우지수는 12.35% 급락하며 2018년 10월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고, 이 기간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50도 12.39% 곤두박질쳤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코로나 공포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본지는 우한 코로나가 세계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주제로 스티븐 로치 미 예일대 교수, 타일러 코언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 안토니오 파타스 프랑스 인시아드 교수, 제프리 프랭켈 미 하버드대 교수 등 석학 네 명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국 등의 폭발적 코로나 확산에 우려"

석학들은 지난주를 기점으로 한국과 이탈리아·일본·스페인·이란 등 전 세계에 걸쳐 확진자가 증가한 것이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진단했다. 프랭켈 교수는 "1월 말까지만 해도 증시 투자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은 우한 코로나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며 "이는 지난 2003년 사스 경제 파급 효과 등 전례를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랭켈 교수는 또 "그러나 감염자 숫자가 사스 확진자 수를 넘어서고, 여러 나라에서 감염자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례 없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파타스 교수는 "특히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난 것이 세계에 경종(wake up call)을 울렸다"고 주목했다. 합리적인 공중 보건 시스템을 가진 (한국 같은) 나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쉽지 않으며, 종식을 위해선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렸다는 것이다.

석학들은 최근 주식시장이 세계 경제에 대한 위험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치 교수는 "급격한 확진자 증가와 더불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미국 내 확산 경고 발언 등이 나오면서 그동안 풍부한 유동성이 떠받치고 있던 증시에 조정을 불러왔다"고 했다. 코언 교수는 "현재 주식시장이 경제적인 위험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고, 주가는 더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골골' 세계 경제, 불황에 빠질 수도"

석학들은 감염자가 얼마나 더 증가할지, 언제쯤 사태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대로 커진 중국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최대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도시 봉쇄,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중국의 공급 차질이 이어지고 있어 각국에 '공급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 주요 기업들은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1분기 매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로치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연간 세계 전체 생산량에서 현재 중국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19.7%로, 사스 발생 당시인 2003년 8.5%의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며 "올해 상반기 세계 경기가 침체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사스 사태 때는 중국과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던 반면, 지금은 작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9%에 그치는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석학들은 "공급 충격으로 인한 피해는 미국 등 모든 나라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가장 큰 피해는 아시아 국가들이 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프랭켈 교수는 "중국인들의 소비 의존도까지 높은 한국과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며, 그다음이 호주·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중동 지역, 그 뒤로는 유럽과 미국 순으로 영향이 클 것"이라고 했다. 파타스 교수는 "만약 한국 등 중국 외의 아시아 국가에서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공장 가동 중단 같은 조치가 시행된다면 1분기에 0% 가까운 성장에 그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경기 부양책으로도 대응에 한계"

홍콩·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각국은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대거 투입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한국도 대규모 추경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파타스 교수는 "통화·재정 정책을 통한 수요 진작 중심의 경기 부양으로는 지금 같은 공급 차질로 인한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코언 교수는 "정부의 재정 지출은 근본적으로 의료·보건 분야에 집중되어야 하며 그 외의 지출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코언 교수는 이어 "재정을 쏟아붓는다면 당장 GDP (국내총생산)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아) 사람들은 훨씬 더 가난해질 수 있다"며 "우한 코로나 사태는 향후 1년간은 세계 경제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