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패션 매출 20~30% 급감… 봄옷 출시했지만, 판촉 활동도 못 해
잇따른 점포 휴점에 연쇄 피해 우려... "상반기 장사 포기"

서울의 한 백화점, 봄옷을 입은 마네킹 옆 모니터에 점포 위생 관리에 대한 안내가 나오고 있다.

"멋 내고 갈 데가 없는데 누가 옷을 사나요."

1일 찾은 서울의 한 백화점 의류 매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마네킹들은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 입었지만, 정작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백화점 손님이 뚝 끊긴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1일부터 27일까지 전체 매출이 24.3% 감소한 가운데, 여성 패션은 33.4%, 남성·스포츠 패션은 31.5% 매출이 떨어졌다. 해외 패션 매출은 3% 신장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여성의류 매출이 전년 대비 37% 하락했다. 남성의류와 아웃도어 부문의 매출이 각각 22.7%, 17.4% 떨어졌고, 명품은 7.8% 신장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월에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9개 점포가 휴점했고, 작년엔 하지 않았던 정기 휴무도 했기 때문에 매출 감소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패션·미용 상품의 판매가 활발한 TV홈쇼핑에서도 꾸미기 관련 소비가 급감했다. 지난달 1~17일 롯데홈쇼핑에서는 파운데이션, 메이크업 베이스 등 화장품 주문액이 31.6% 감소했고, 가방, 시계, 목걸이 등 명품·주얼리 상품 주문액은 14% 줄었다.

코로나 사태 후 생필품과 식료품 수요가 온라인 쇼핑몰로 옮겨간 데 반해, 의류 및 화장품은 온·오프라인 매출이 모두 정체된 양상을 보인다. 학교 개강이 연기되고 재택 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외모를 치장하는 소비가 줄어든 것이다. 직장인 이 모씨는 "재택 근무로 집에만 있으니 옷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외출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나가니 화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백화점 직원.

패션 업체들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올겨울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방한복 판매가 부진해 기대 이하의 실적을 거둔 데 이어,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면서 봄 장사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패션업체들은 지난 4분기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빈폴, 구호, 갤럭시 등을 운영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4분기 매출(4850억원)과 영업이익(300억원)이 전년 대비 각각 2%, 2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코오롱스포츠 등을 운영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의 영업이익(84억원)은 65.9% 감소했다.

아웃도어 업체의 경우 야외활동이 잦은 봄철을 겨냥해 미세먼지와 황사에 대비한 기능성 점퍼를 대거 내놨지만, 바이러스 공포로 외출을 꺼리면서 판촉 활동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한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방진(防塵) 재킷을 보고 바이러스도 막아주냐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할 말이 없었다"라며 "봄에 진행하려던 외부 행사를 잠정 연기하는 등 판촉 활동을 중단했다. 사실상 상반기 장사는 끝났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온라인 쇼핑몰이 선방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이라 부진을 만회하긴 역부족이다. 한섬의 온라인몰 한섬닷컴은 최근 한 달간 매출이 전년 대비 50%가량 증가했고, 홈 피팅 서비스 ‘앳홈’의 매출도 35% 늘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이랜드 몰도 2월 매출이 20% 신장했다. 특히 아동복은 150%가 넘는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홈패션도 두각을 나타냈다. G마켓에서는 최근 한 달간 집에서 입는 홈웨어 상품군의 매출이 전년 대비 86% 증가했다. 일부 쇼핑몰에서는 비닐 가림막이 달린 모자가 '코로나 모자'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방역 작업을 펼치는 대구의 한 백화점.

소비 부진의 장기화에 따라 패션업계의 부진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화점의 경우 의류·잡화·명품 등 패션 상품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70% 이상인데, 코로나19 확진자 방문 여파로 임시 휴점과 내점객 감소가 이어지고 있어 연쇄 피해가 예상된다. 업계에는 이달에만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매출이 2000억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에도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2~3개월간 매출이 6% 감소하다, 4~5개월 후 회복세를 보인 바 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했을 때는 6개월간 업종 악화와 회복이 진행됐고, 호텔·레저, 유통, 섬유·의복, 화장품 순으로 회복 기간이 걸렸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이전 바이러스 사태 때보다 커 회복 기간이 더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