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피시(위)와 배아(아래)를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킬리피시의 배아는 자신의 수명보다 4배 가까운 시간 동안 휴면에 들어가 발생을 중단하지만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 수명보다 네 배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잠을 자는 물고기 배아가 있다. 그동안에는 발생이 멈춰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터콰이즈 킬리피시'(African turquoise killifish) 이야기다. 미국 스탠퍼드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지난 2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킬리피시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짐바브웨 연못에 서식한다. 이 지역은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기도 한다. 킬리피시 수명은 4~6개월 정도로 짧은 편이라, 연못의 물이 마르는 상황은 성체에는 크게 치명적이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인 킬리피시 배아는 비가 내려 연못의 물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발생을 멈추고 휴면에 들어간다. 짧게는 5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다. 이는 물고기 수명보다 더 긴 시간이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80세 수명을 가진 사람이 160~400년으로 생명이 연장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가뭄 같은 악조건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생명의 위협에 맞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진은 일반 배아와 발달을 멈춘 배아에서 부화한 성체를 비교했다. 휴면기는 성체 물고기의 성장과 수명, 번식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즉 자신의 수명보다 더 오랫동안 발생을 중단하는 기간 노화(老化)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휴면 기간 생명활동이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세포분열과 조직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은 억제됐지만, 근육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는 발현됐다. 이 유전자가 없는 배아의 경우 휴면이 일찍 끝났다. 킬리피시의 이런 특성은 인류 노화의 비밀을 푸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앤 브루넷 스탠퍼드대 교수는 "휴면 상태를 조절해 성인의 조직과 세포 수명을 늘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 반 길스트 워싱턴대 교수도 사이언스 논평논문에서 "이번 발견은 노화와 장수의 신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킬리피시 수명은 실험용 쥐(약 2년)보다 짧고, 사람과 비슷한 노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어 노화 연구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