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14일 출시한 ‘갤럭시Z 플립’. 이 제품 화면에는 독일 쇼트사(社)에서 개발한 30마이크로미터(0.03㎜) 두께의 초박형 강화유리가 사용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출시한 폴더블(접히는)폰 '갤럭시Z 플립'의 화면에 초박형 강화유리(UTG)를 채택했다. 지난해 첫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에 폴리이미드(PI)라는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것과 달리 유리 소재를 도입한 것이다. 플라스틱에 비해 주름이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강화유리는 현재 모든 스마트폰 화면에 사용된다. 하지만 금속이나 플라스틱과 달리 외부 충격에 쉽게 깨지는 특성상 수시로 열고 닫아야 하는 폴더블폰 화면 소재로 사용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Z플립 디스플레이는 유리가 아닐 것"이라는 루머까지 나왔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유리를 종이처럼 휘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소재공학 전문가들은 "어떤 물질이든 아주 얇게 만들면 휘어진다"고 설명한다. 소재마다 고유의 유연성이 다를 뿐 유리 같은 소재도 두께를 극한(極限)까지 줄여버리면 부러지지 않고 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보다 얇아지면 유리도 휜다

모든 고체는 구부리거나 접으면 접히는 부분에 스트레스(충격)가 생긴다. 접히는 바깥 부분이 늘어나면 이를 막기 위해 내부에 역(逆)방향으로 잡아당기는 힘인 응력(應力)이 걸리는 것이다. 응력은 두꺼울수록 커진다. 접었을 때 늘어나는 면적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응력이 물질의 내구 한도를 넘어서면 변형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양장본 책은 펼쳤다가 접으면 책의 바깥쪽 면이 순간적으로 늘어나는데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지탱하려는 힘이 발생해 책이 찢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유리를 양손으로 구부리면 휘지 않고 바로 깨지거나 금이 가는 것도 순간적으로 응력을 견디지 못해 변형되기 때문이다.

반면 유리를 종이처럼 아주 얇게 만들면 접거나 굽혀도 응력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깨질 일이 없는 것이다. 배병수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Z 플립에 사용된 초박형 강화유리 표면 자체는 다른 유리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접히는 부분은 스트레스가 적어 수없이 접었다 펴도 끄떡없는 것"이라며 "유리가 얇아질수록 외부 힘이 가해지는 면적도 적어져 깨질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폴더블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업계에서는 디스플레이에 사용할 강화유리의 두께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리를 종이처럼 쉽게 접기 위해선 머리카락 굵기(약 0.1㎜)보다 얇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독일 유리 가공 업체 '쇼트'에서 0.03㎜ 두께 초박형 강화유리를 공급받아 여기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자를 붙여 Z 플립의 디스플레이를 완성했다. 삼성에 따르면 Z 플립은 성능 테스트에서 20만번 이상 접었다 펴도 화면 손상이 없었다. 쇼트는 최근 강화유리 두께를 0.025㎜까지 낮추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 내구성 강화도 중요

물론 유리를 무조건 얇게 만든다고 해서 Z 플립 디스플레이처럼 안정적으로 휘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리는 표면에 몇㎜만 균열이 생겨도 그곳을 중심으로 파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쇼트는 Z 플립에 적용된 초박형 강화유리에 특수 물질을 주입해 균일한 내구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어떤 물질인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강화유리를 단단하게 하는 화학 처리를 했거나, 유리 안에 특수 구조를 넣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리의 원료인 소듐·바륨보다 크기가 큰 이온을 처리한 것이다. 덩치가 큰 이온을 유리에 넣으면 표면이 가득 차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유리가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반대로 압축하려는 힘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유리 표면이 강화되는 것이다. 또 유리 안에 미세 섬유를 격자 구조로 짜넣는 기술도 거론된다. 격자 구조에 생기는 작은 공간들이 외부 충격을 분산하는 효과를 낸다. 김대형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씨실과 날실로 듬성듬성 만들어진 겨울 스웨터를 세게 늘리거나 비틀어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스마트폰·바이오연구 등 활용 분야 무궁무진

'초박형 강화유리'는 폴더블폰뿐 아니라 롤러블 TV,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두께가 얇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두께와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초박형 강화유리는 최근 바이오 연구와 의학 진단에도 활용되고 있다. 인체 장기 세포나 암조직을 담는 랩온어칩(lap on a chip)을 두께 1㎜ 이하 매우 얇은 유리 소재로 만드는 것이다. 랩온어칩은 손톱만 한 유리 기판에 실험실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바이오 칩을 말한다. 일반 유리를 사용할 경우 칩이 깨지거나 외부 화학물질에 의해 샘플이 변질돼 오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박형 강화유리로 만들면 이런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