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2년 만에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죠. 벼락출세는 아닙니다. 10년 넘게 레이더 한 우물만 판 결과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팁스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이재은(38) 비트센싱 대표는 "업력(業歷)도 짧고 매출도 없는데 어떻게 CES까지 가서 상을 받았는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CES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다. 비트센싱은 자동차 부품회사 만도에서 차량용 레이더를 개발한 이 대표 등 세 명이 주축이 돼 세운 스타트업이다. 레이더와 카메라를 넣은 손바닥만 한 '트래픽 레이더'가 핵심 제품이다. 자동차나 신호등에 붙여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추적하고 수집할 수 있다. 이 제품은 전자기파를 보내 물체를 감지하는 레이더다. 하지만 레이저를 보내 물체를 감지하는 라이다(LiDAR) 센서보다 정확도는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비트센싱 제품은 레이더에 카메라를 붙여 정확도를 높였다. 가격도 라이다의 수십 분의 1 수준이다. 이 대표는 "우리 레이더 센서는 악천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도로 위 모든 활동을 감지하는 자율주행의 '눈'"이라고 했다. 지난해 세종시와 성남시 판교에 센서 30여대를 설치해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베트남 도시 세 곳에 수출하는 계약도 맺었다. 스타트업 전문가들은 비트센싱을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는다.

◇레이더 10년 외길

비트센싱은 임직원이 25명에 불과하지만, 시스템 디자인, 하드웨어, 신호처리,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축적된 기술력을 갖고 있는 것이 비결이다.

이재은 대표는 포스텍에서 전자전기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2008년 병역특례로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에 입사했다. 그는 "당시 운전자 지원 시스템인 에이다스(ADAS)가 막 떠오르던 시절이라, 회사에서도 레이더 센서를 개발해보자며 사람을 모으던 때였다"며 "신호처리를 전공한 사람이 필요해 얼떨결에 개발팀 셋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고 말했다. 2014년 만도가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초고주파 77GHz(기가헤르츠) 차량용 레이더도 그의 작품이었다. 2017년 팀 리더까지 맡았던 이 대표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는 "박사도 보내줄 정도로 고마운 회사였지만 새로운 것을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비트센싱은 2018년 1월 벤처캐피털 퓨처플레이에서 투자받은 5억원으로 성남시 아파트형 공장을 세웠다. 이 대표는 "특허만 33개(출원 포함)일 정도로 기술력에서 자신이 있었다"며 "공동창업자도 만도 레이더 멤버라 합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차·선박·드론도 목표"

창업 1년 반 만에 나온 비트센싱의 시제품 '트래픽 레이더'는 곧바로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이 대표는 올해 말까지 신제품 출시를 목표로 연구 개발 중이다. 운전자 눈을 대신해 차량 운행에 필요한 전후방과 측면 등 시야 확보를 할 수 있는 필수 장비인 '고해상도 4D 이미징 레이더'다. 이 제품을 들고 내년 CES에 다시 참가하는 게 이 대표의 목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자율주행 센서시장은 2030년 80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자동차 자율주행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시티·선박·드론·로봇 등 무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비트센싱의 레이더 센서를 달고 싶다고 했다. 또한 그는 모든 자율주행 분야에서 모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데이터 회사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올해 미국·베트남 등지에 해외 지사를 설립, 글로벌로 가는 첫발을 내디딜 계획이다. 그는 "해외에서 우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4년 뒤에는 매출 2700억원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