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우한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800명을 넘어서자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이스라엘·바레인 등 6국은 입국 금지를, 영국·마카오·카타르 등 9국은 자가 격리를 포함해 입국 절차를 강화하며 우리 국민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했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를 '중국만큼 위험한 감염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에 대한 여행 경보를 2단계로 올린 미국이 조만간 3단계로 상향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베트남 다낭 공항에서 23일(현지 시각) 베트남항공의 지상직 공무원이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항공은 인천과 하노이·호찌민·다낭·냐짱을 오가는 노선을 다음 달 운항 중단한다고 밝혔다.

각 국가들의 이런 공식적인 조치와 별개로 외국 항공사들이 잇따라 한국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거나 감축하며 한국과 오가는 문을 잠그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는 길도,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길도 속속 차단되는 것이다. 한 항공업계 임원은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해외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불과 한 달 만에 손 써 볼 틈도 없이 한국이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국 금지, 운항 중단 잇따라

24일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국가(지역)는 이스라엘과 바레인, 요르단, 키리바시, 사모아, 영국, 카타르 등 15개 국가(지역)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22일 한국인 입국을 막고 대한항공 비행기를 그대로 돌려보내자 대한항공은 "24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이스라엘 노선 운항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는 공식적으로 입국 금지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23일 입국한 한국인 중 일부가 발열 증상을 보이자 입국 보류 조치를 하고 병원으로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외교통상부는 23일 대구와 청도에 대한 여행을 재고하라는 3단계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베트남도 한국에서 입국하는 한국인과 자국민을 14일간 격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베트남뉴스 등이 24일 보도했다.

정부 조처보다 하늘길은 먼저 닫히고 있다. 몽골 정부는 24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인천~울란바토르 노선 운항 중단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로 오는 항공편을 운항 중단하거나 감편하는 외국 항공사도 늘고 있다. 한국행 비행기 이용 승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감염 위험성이 높아지자 선제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은 다음 달 인천~싱가포르 노선 운항을 감편한다. 이달 초만 해도 이 항공사의 인천~싱가포르 노선 이용객은 하루 1400명을 넘었지만, 최근에는 900명 안팎으로 40% 가까이 줄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는 싱가포르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자, 우리 국민들이 싱가포르 여행을 꺼렸다"며 "하지만 최근엔 싱가포르 국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동남아 항공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필리핀항공은 인천-마닐라 노선을 다음달 매일 2회 운항에서 매일 1회 운항으로 감편하고 인천-클락, 세부 노선은 3월 말까지 일시적으로 운항 중단하기로 했고, 에어마카오는 일단 이달 29일까지 인천~마카오 노선 운항을 중단한 상태다. 타이항공은 인천·부산~방콕 노선을, 베트남항공은 인천~하노이·호찌민·다낭·냐짱 노선을 다음 달 운항 중단한다. 뉴질랜드 항공사인 에어뉴질랜드도 24일 "오클랜드~인천 노선 운항을 다음 달 8일부터 6월 말까지 운항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일본항공은 다음 달부터 김포~하네다 노선을 일 2회에서 1회로, 부산~나리타 노선을 일 3회에서 2회로 감편한다. 홍콩 최대 여행사 중 하나인 강태여행사는 24일 "3월 31일 이전 출발하는 모든 한국 여행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를 중국처럼 입국 제한하는 국가와 항공사가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또는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제한하고 있는 국가는 총 41국"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지금처럼 급격히 늘면 수십 국가가 입국을 제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결정에 항공사들 촉각

국내 항공업계는 특히 미국의 여행경보 단계 조정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여객 노선 매출 가운데 미주 지역이 29%, 동남아가 21%, 유럽이 19%, 중국이 12%, 일본이 9%를 차지한다. 미국 지역 하늘길이 막히면 매출 약 30%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미 여행 심리 위축으로 지난 1월부터 24일까지 미주 지역으로 간 우리나라 여행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가량 줄어든 상황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중국·일본·동남아 노선 붕괴에도 미국·유럽 노선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면서 "미국 감염 당국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지난 22일 우리나라에 대한 여행경보 단계를 2단계(강화된 주의)로 올렸는데 미국인의 한국 여행 자제를 의미하는 3단계도 언제든 가능하다고 업계는 전망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지금 운항하는 노선도 탑승률이 낮아서 항공사들이 고민이 많을 텐데 개점휴업 상황까지 생각해야 하는 때가 됐다"면서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최대 위기에 항공업계가 초토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부산 모든 임원, 사표 제출]

우한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항공업계는 연일 강도 높은 비상경영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추세가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경우 도산하는 항공사가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항공업계에 팽배해 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은 24일 "대표이사 이하 모든 임원이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지난주 20~30%씩 급여를 반납하기로 한 임원들이 사직서 제출을 통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경영 위기 극복에 앞장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에어부산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다음 달부터 무급 희망 휴직을 실시한다. 직원들은 '주 4일 근무, 무급 15일 휴직, 무급 30일 휴직'의 3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회사는 중국과 동남아 지역 25개 노선의 운항을 다음 달 중단한다.

지난해 9월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한 이스타항공에서는 조종사 노동조합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와 사측은 지난 20일 임금협상 특별교섭을 실시하고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임금 25%를 삭감하는 데 합의했다.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합의안은 70.06%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당초 회사에서는 무급 휴직 협조를 요청했다"면서 "조종사 노조 측에서는 무급 휴직은 자발적 참여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25%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면서 먼저 임금 삭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