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지원금은 결국 세금, 정확히 심사해야"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채환(52·남)씨는 "요즘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만 450여명 쏟아져 나오자 그렇게 붐비던 동성로마저 ‘암흑 상태’에 빠진 탓이다. 그는 "17년 장사했는데, 이정도로 장사가 안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평소 매출의 70% 정도가 떨어져 나갔는데, 점점 더 심해질 것 같다. 문을 열면 열수록 손해가 커져 주변 가게도 여럿 문을 닫기 시작했고, 나 역시 임시 휴업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잠잠해지는 듯했던 코로나19가 전국 단위로 빠르게 확산하자 소상공인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이에 정부를 비롯한 민간 금융회사까지 소상공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소상공인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지원책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한 비율은 48.8%, 만족스럽다는 응답은 29.1%였다.

현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현금을 손에 쥐기까지의 시간이 현장의 시급성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소상공인 대부분은 최저임금 상승과 경기 불황 등으로 대출이 많은 상황이라 추가 대출을 받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인적이 끊긴 대구 동성로.

◇신청부터 지급까지 길게는 2주 소요

24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200억원 규모로 마련된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에 13일 이후 현재까지 1만2000건, 총 6200억원의 신청이 들어왔고 이 중 143건, 약 73억원이 집행됐다. 소진공은 "지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최종 지원 금액은 2400억원이었다"며 "이번에도 당초 예정된 지원액은 200억원이지만, 추경 등이 이뤄지면 추가 지원에 나설 수 있어 일단 계속 신청을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소진공의 실제 집행 건수 및 금액이 적은 이유는 신청부터 돈을 받기까지 최대 2주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소진공 관계자는 "자금 성격상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를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며 "소진공과 신용보증재단, 은행 등 3개 기관이 얽혀있어 기간을 줄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집행까지 시일이 많이 소요되는 것은 다른 기관도 비슷하다. 코로나 신규특별자금 지원에 나선 기업은행의 경우 21일 기준 163건에 약 261억원을 지원했는데 통상 심사에 5영업일이 소요된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저신용자 소상공인을 위한 ‘미소금융 창업·운영자금’이 경우 심사, 교육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해 10일 안팎이 필요하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전화 한통만 해도 24시간 내에 대출해준다는 곳이 널려있는데, 그정도로 빠르고 선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당장 굶어죽기 직전인 소상공인들은 열흘, 2주씩 기다릴만큼의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임시 휴업에 들어간 대구 동성로의 한 상점.

◇기초체력 떨어진 저신용 소상공인들, 추가 대출 부담

현재 나와있는 대책은 대부분 대출 또는 보증의 형식이다. 대구 동성로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정부가 지원하는 대출도 마냥 내주는 것이 아니라 다 조건이 있어서 이미 대출이 많은 소상공인들은 이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초체력이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며 "가장 자금이 절실한 이들은 저신용자들인데, 현 정부 지원책은 물에 빠진 이들을 조건과 절차를 따져 구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이 필요하다고 꼽는 정책은 저신용 소상공인을 위한 특별특례보증 방안을 확대하는 것(32.2%)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지원 정책(32%)이 1, 2위를 차지했다.

소상공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조건이 완화된 금융 지원이나 피해 보상이다. 홍수, 전염병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는 피해 보상이 이뤄지는데, 확진자가 다녀가 어쩔 수 없이 휴업해야 하는 소상공인도 이같은 보상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현재 소상공인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만큼 현금 보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이럴 때일수록 재기 가능성 여부를 보다 철저히 가려 지원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차례로 한국 경제 전체가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면서도 "모든 자영업자를 무조건 구할 의무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들을 지원하는 자금 역시 세금인 만큼, 정부는 이를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시일이 다소 소요될지라도 보다 정확히 심사해 지원하는 것이 결국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