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신용정보법 설명회에 금융권·IT업계 총출동
사람 몰려 발열체크 못 하고 진입통로 관리도 허술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 2층 로비는 대회의실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회의실이지만 이날 열린 '개정 신용정보법 설명회'에 500여명이 몰리면서 회의실이 가득 찬 것이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작은 기침 소리 하나에도 움찔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날 설명회는 금융위원회와 신용정보원이 함께 주관한 행사다. 오는 8월 5일 시행을 앞둔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금융권에 설명하고,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하위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대형 금융지주부터 은행, 보험사, 카드사, 핀테크 스타트업까지 모든 금융회사가 미래먹거리와 관련해 예의주시하는 사안이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신용정보법 개정안과 하위법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회사의 사활이 갈릴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조금이라도 규모가 있는 금융회사라면 이번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신용정보법 개정안 설명회에 500여명의 참석자가 모였다.

문제는 설명회가 열린 시점이다. 지난 19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하룻밤 새 30명의 우한폐렴(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20일에도 전국에서 확진자가 계속 늘어 100명을 넘겼다. 사망자도 나왔다. 대유행(팬데믹)의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500여명의 참석자가 한자리에 모여 100여분 동안 있어야 하는 대규모 행사를 진행해야 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도 수백여명이 한 교회에서 모인 종교행사였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금융회사 직원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몰랐다. 사람이 좁은 공간에 가득찬 걸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아직 우한폐렴으로 정부 행사를 취소한 적이 없고, 행사 운영지침도 준수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날 설명회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린 탓에 행사 운영지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정부·지자체 행사 운영지침은 실내행사 참여자 대상으로 발열체크를 반드시 하도록 했다. 이날 설명회장 입구에도 발열체크를 위한 열감지기가 한 대 있었으나 짧은 시간에 수백여명의 사람이 몰리자 제대로 발열체크를 하지 않고 행사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설명회 중간에 도착한 사람들은 발열체크도 하지 않았다.

또 행사 운영지침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행사장 진입 통로는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했지만, 이날 설명회장 입구는 어떻게든 설명을 들으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출근길 만원 지하철보다 빽빽했다. 이런 가운데 행사 진행자는 "신종코로나보다 신용정보법 설명회의 열기가 더 뜨겁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개정 신용정보법 시행 일정에 맞추려면 이날 설명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3월초에는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해야 하는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미룰 수 없었다"며 "최대한 신종 코로나 관련 행사 운영지침을 준수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유연한 대처가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 설명회가 워낙 중요하고 금융권의 관심이 큰 만큼 취소할 수 없었다면 온라인이나 비대면 방식으로 설명회를 진행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빅데이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인데, 정작 그걸 설명하는 방식은 수십년 전과 다름없이 한날한시에 수백명을 한자리에 모으는 식으로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며 "수백여명이 모이다보니 궁금한 내용을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대답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더 안전하고 더 편한 방식을 찾을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