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정책을 만드는 경제부처 과장들의 직업적 만족감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논란이 있었던 2015년보다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생활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과장급 간부는 5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진로를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공무원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전체의 60%에 달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과장급 관료 10명 중 6명은 관료 생활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과장급 관료의 직업적 자긍심 저하는 공무원의 권한 약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의 권한과 위상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고 생각하는 과장의 비중은 10명 중 9명 이상이었다. 5년 전인 2015년에도 같은 비중이었다. 청와대와 국회 등 정치권이 과도하게 정치논리로 경제정책 수립에 개입하는 게 관료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훼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점심 식사를 마친 공무원들이 정부서울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조선비즈는 기획재정부 등 7개 경제부처 과장(서기관)급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5년 전인 2015년 8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세종시 이전 14개 부처, 203명 대상) 결과와 비교 분석했다. 공무원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5년 전에는 39%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3.4%에 그쳤다. 관료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과장들의 직업적 만족감이 5년 전에 비해 절반 가량 낮아진 것이다.

대신 보통이라는 응답이 34%에서 57.1%로 크게 늘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7.1%에서 19%로 조금 줄었다. 한 정부 부처의 과장은 “불만족한 심경을 드러낸 응답이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만족감을 나타낸 응답이 줄어든 폭이 더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보통이라는 응답이 늘어난 것은 공직 수행에 대한 자부심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길우

관가에서는 세월호 참사 후 관피아 논란, 공무원 연금 개혁 등으로 공무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보다 공무원의 직업적 만족감이 떨어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 전직 관료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공직자의 민간 재취업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에서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을 축소하는 개혁이 추진됐기 때문에 당시 공무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었다”면서 “그 당시에 비해 ‘공무원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줄었다는 건 공직 사회의 활기가 그만큼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관료의 사기가 저하된 주된 배경은 공무원의 권한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의 권한이 줄었다’는 응답은 2015년 93%였고, 올해 조사에서도 94%를 기록했다.

그래픽=박길우

공무원의 권한이 약해진 원인으로는 국회와 정치권의 영향력 확대가 꼽혔다. 올해 조사에서 국회와 정치권의 영향력 강화가 공무원의 권한 약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응답은 52%였다. ‘시장 및 기업 등 민간 부문의 역량 복잡 다양화’를 지목한 응답은 40.9%였다. 정부 정책이 민간의 경제활동을 증진시키는 시장 논리가 아니라 정치권과 국회의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생각이 경제부처 과장들 사이에 퍼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부처 과장 10명 중 7명(69.8%)은 현재 경제정책 방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으로 청와대를 지목했고, 65.2%는 국회 당정협의나 청와대 조율 과정에서 부처 의견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응답했다. 각 부처의 경제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기재부만 놓고 보면 이 질문의 응답률이 70% 이상으로 높아진다.

그래픽=박길우

실제 현 정부 집권 후 굵직한 정책은 청와대와 국회의 요구대로 관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이 관할 부처인 기재부와의 조율을 거치기 전 청와대와 여권 정치인 중심으로 기정사실화됐다. 지난해 분양가 상한제 도입 등 부동산 규제도 정치인 출신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건설 투자감소 등의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는 기재부의 경제 논리를 무력화시킨 사례다.

한 차관급 전직 관료는 “공무원 직업에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국가 정책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보람인데, 청와대와 국회에 정책 결정권을 빼았겼다는 응답이 많은 것은 관료들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상당한 자괴감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경제부처 과장 10명 중 6명은 진로를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무원을 하지 않겠다(59.2%)'고 답했다. 2015년 조사에서도 공무원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62.6%였다. 관료 생활을 15~20년가량 경험한 직업 관료들이 공무원 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아노미(Anomie)적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노미는 사회적 혼란으로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국장급에서 퇴직한 한 전직 관료는 "중앙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시장과 멀어져 긴장감이 떨어지게 됐고, 정치권에 밀리다보니 관료들이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다"면서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관료로서 무엇을 해야하는 지 목표 설정이 제대로 안되는 게 오늘날 관료 사회의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