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반(反)조원태 연합의 강성부 KCGI 대표가 20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조 회장 퇴진을 촉구했다. 다음 달 말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개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강 대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서는 "경영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흠집내기식 기자간담회에 불과하다"면서 "이사회를 장악하면 조 전 부사장 복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강성부 KCGI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조 회장 측(33.45%)과 반조원태 연합(31.98%)의 지분 차이는 1.47%포인트에 불과하다. 소액 주주들의 표심에 따라 한진그룹 경영권이 요동치는 상황이다 보니, 양측은 앞으로 한 달여간 치열한 여론전을 벌일 전망이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를 결정하는 지주회사 한진칼 주총은 다음 달 말 열린다.

◇강성부, 작심한 듯 조원태 비판

강 대표는 이날 경영 실적 악화를 들어 조 회장을 공격했다. 강 대표는 "한진칼 및 대한항공의 2014~2019년 누적 적자가 무려 1조7414억원에 달한다"면서 "더 큰 문제는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3분기 기준 861.9%로 코스피 상장 기업 중 압도적 1위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진그룹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 놓인 것은 모두 오너들의 독단적 의사 결정 때문이었다"면서 "총체적 경영 실패"라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조 회장 측이 최근 이사회에서 결정한 자산 매각 등 경영 개선 방안도 비판했다. 강 대표는 "한진그룹이 지난해 2월 '비전2023'을 발표해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부지 매각, 부채비율 감소 등을 약속했지만 어느 하나 진행된 게 없다"며 "현 경영진은 신용을 잃었다"고 했다. 한진칼이 이달 초 이사회에서 내놓은 각종 재무 구조 개선안에 대해서도 "공부 안 하고 전교 꼴찌 하다 갑자기 내년에 전교 1등 하겠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에 대해 강 대표는 "(조 전 부사장·KCGI·반도건설 등) 주주들은 절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반조원태 연합이 한진칼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추천한 김신배 포스코 이사회 의장도 나와 경영 철학과 비전을 설명했다. 김 의장은 항공 전문가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경영의 본질은 다 같고 항공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했다.

반도건설이 최근 한진칼 지분 5.02%를 추가 매입한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 지분은 주주명부 폐쇄 이후에 매입한 것이어서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반조원태 연합이 이번 주총에서 지더라도 임시 주총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 대표는 "임시 주총은 생각하지 않고 있고 이번 주총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한진 "조현아 복귀 위한 꼼수"

한진그룹은 입장 자료를 통해 "반조원태 연합이 조 전 부사장 복귀를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조원태 연합이 지난 13일 내놓은 주주 제안에서 '배임·횡령으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이사로 선출할 수 없다'고 명시하면서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막은 것처럼 홍보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조 전 부사장은 항공보안법·관세법·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 배임·횡령으로 처벌받은 적은 없다. 반조원태 연합의 주주 제안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가 가능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자 강 대표는 "계약 내용에 확실하게 경영 참여를 못 하게 돼 있다"고만 할 뿐 구체적 답은 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후 김신배 의장에게도 '조 전 부사장이 참여한 것 때문에 명분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2017년 조 회장이 대한항공 사장에 취임한 이후 2018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지난해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봤다"면서 "2011년 회계 기준이 바뀌어 항공기 리스료가 부채로 잡혀 부채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