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스타트업의 등장은 전통 산업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씨드로닉스는 반대다.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AVISS, Around View Intelligence System for Ship)을 만들었는데, 선박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환영받았다. 2016년 팀의 역량만 보고 투자했고, 그다음 해에 추가 투자를 했다.

사실 2015년에 처음 이 스타트업을 만났을 때, 창업자의 이름에 반했다. 박별터〈사진〉였다. 왠지 반짝반짝한 느낌이 아닌가. 실제로 그랬다. 당시 네 명이었던 씨드로닉스는 대학원에서 어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드론과 무인 선박을 만들었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드론의 정찰 기술, 이미지 분석 기술, 무인 선박이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가는 항법 기술 등이다. 하지만 해파리 잡기라니…. 사업성은 부족해 보였다. 무인 선박은 '언젠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한참 멀어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첫 투자부터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팀은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시장이 빨리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새로 피봇(전환)한 아이템은 인공지능에 기반한 USV(Unmanned-Surface Vehicle, 무인 선박)였다. 배가 무인화되면 파도·안개 등으로 인해 육지의 자율주행과 차별화된 기술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여기에는 아직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달라진 아이템에 과감히 추가 투자했다.

기술은 빠르게 완성됐지만, 후속 투자가 없었다. 박사 4명이 시작했고, 도전적이고, 바다라는 험한 환경에서 압도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는 스타트업이라 많은 벤처캐피털이 관심은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무인 선박이 언제 돈을 벌까'라는 것이 벤처캐피털 시장의 중론이었다.

씨드로닉스와 시장을 더 확장하고, 기술을 고도화했다. 여기에는 본인이 국내 최초의 초소형 무인비행로봇 스타트업 창업자 출신이기도 한 황희철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사가 도왔다. 무인 선박이라는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중간 단계에서 어떤 사업이 가능할지 찾아본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선박의 집결지인 항만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배가 항만에 주차하는 접안에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씨드로닉스가 쌓아올린 제어·센서·분석 기술은 도선사와 항만 관계자들이 안전하게 접안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씨드로닉스는 스타트업과 기존 산업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보여준 사례다. 사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우리가 다 혁신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고,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해관계자가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하면서 사업을 잘 설계했다.

이를 계기로 조선업 같은 중후장대 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한발 가까워진 것도 좋은 신호다. 울산항만공사는 먼저 씨드로닉스에 테스트베드를 제공했고, 글로벌 항만 업체들을 한자리서 만날 수 있는 박람회 참가도 지원했다. 신규 계약들이 착착 성사되고, 지표까지 올라가자 초반에 외면했던 벤처캐피털들도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작년 후속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사실 수차례 사업 모델을 바꾼 씨드로닉스의 창업팀은 오히려 투자자인 우리에게도 큰 배움이었다. 창업팀이 처음 세운 목표와 그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에 어떻게 진입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목적지까지 천천히 나아가는 형태의 사업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스타트업의 불모지인 해양·항만 분야에서 씨드로닉스의 로고가 박힌 무인 선박이 오대양을 떠다니는 날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