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창신동의 한 봉제 공장. 평소 6명의 직원이 재봉틀을 돌려야 할 이곳에서 박종윤(54) 대표 혼자 멈춰 선 재봉틀을 보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동대문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창신동 일대 봉제 공장에 2월은 봄 신상품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다.

그러나 요즘은 창신동 골목길에서 재봉 기계 소리가 사라졌다. 통상 의류업체들은 도매상에서 원단을 떼어다 봉제 공장에 옷 제작을 맡기는데 이 일대에서 소비되는 원단의 80%가 중국산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여파로 중국에서 원단을 들여올 수 없게 됐고, 도매상 창고의 원단 재고는 거의 바닥났다. 박 대표는 "중국인 관광객·바이어가 줄어 옷을 만들어도 팔기 어려워졌는데, 이젠 원단이 없어 그나마 만들 수도 없게 됐다"고 했다. 박 대표에게 옷 제작을 맡기던 의류업체 한 곳은 설 연휴 이후 폐업했다. 35년간 봉제업을 해온 박씨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잘될 땐 월매출 3000만원을 찍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공장 월세 80만원 내기가 버겁다. 박씨는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이렇진 않았다"며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울 평화시장도 텅~ - 지난 6일 찾은 서울 중구 평화시장은 한산했다. 예년 같으면 봄 신상품을 준비하려는 이들로 북적일 때이지만, 우한 폐렴 확산으로 시장을 찾는 이들을 찾기 어려웠다. 봉제 공장들은 전체 사용 원단의 80%를 차지하는 중국산 공급이 끊겨 옷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우한 폐렴'발(發) 공급망(서플라이 체인) 붕괴는 자동차·IT(정보기술) 등 거대 산업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각종 중국산 원·부자재 공급이 끊기면서 중소기업·영세상인들이 담당하던 산업의 실핏줄까지 막히고 있다. 이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에 '바이러스 쇼크'까지 덮치자 "못 견디겠다"며 주저앉고 있다.

◇중소업종 공급망까지 붕괴

국내에 공장을 둔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 A사는 거의 일주일째 완제품 생산을 못 하고 있다. 화장품 용기 등 중국산 부자재 수입이 완전히 막혀, 두 배 가격을 주더라도 부자재를 만들어줄 국내 공장을 찾고 있다. 완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수출길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최근 수출한 물건들은 중국 항구 물류센터에 쌓여 있다. 중국의 춘제 연휴 연장뿐 아니라, 바이러스 전파 우려로 중국 내 트럭 운행이 급격히 줄면서 중국 내 물류도 사실상 마비 상태다. A사 관계자는 "우리가 생산하는 마스크, 손세정제 등은 중국 항구에서 '프리패스'된다는데, 화장품은 통관도 안 시켜준다"고 말했다.

중소업체들은 대기업보다 공급망 붕괴에 훨씬 더 취약하다. 비용 절감을 위해 원재료 재고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소형 라디오 기기를 생산하는 B사는 최근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 회사의 기념품용 미니 가전에 들어가는 전기회로·플라스틱 등은 중국산인데 당초 춘제 연휴(1월 24~30일)를 감안해 이달 초 생산 물량까지만 재고를 확보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연휴를 연장하자, 재고가 바닥났다. B사 관계자는 "중국 연휴가 9일 끝난다고 해도, 중국 공장이 제대로 가동될지, 부품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며 "이번 달 장사는 망했다"고 말했다.

대기업보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취약해 동남아 등 다른 지역에서 부품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고, 비싼 국내산을 쓰면 제조 원가를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부품의 70%를 중국에서 들여와 TV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C사는 현재 가지고 있는 부품으로 인천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9일 이후엔 바닥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생존을 위해선 단가가 훨씬 비싼 국산 부품을 써야 하지만, 생산 단가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포장 기계(장비)를 만드는 중소업체 D사는 부품의 30%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이달 말까지는 재고로 근근이 버티겠지만 더 길어지면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일부 부품을 생산할 '금형'(틀)도 이 회사의 중국 공장에 있다. 국내에서 이를 대체할 금형을 다시 만들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 D사 대표는 "지난 6일 아침 중국 현지에서 '체온계와 마스크가 준비되면 10일부터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그러나 현지에서 마스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이은 악재… 이런 불황은 처음"

현대차 국내 공장이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지난 4일부터 전면 셧다운(가동중단)되면서, 1~3차 부품사들도 위기에 빠져 있다. 직원이 20여명인 현대차 2차 부품사 대표는 "우리는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적자만 매년 수억원씩 늘어나는 상황인데, 현대차 셧다운까지 겹쳐 최악"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1차 협력사 관계자는 "지난달은 신정·구정 연휴가 겹쳐 10일밖에 일을 못했고, 이번 달도 현대차 셧다운으로 며칠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나중에 공장을 더 돌려 피해를 만회하고 싶어도, 주 52시간제 때문에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각종 철강 부품을 만드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달 매출은 50% 감소가 불가피한데, 매달 1억원의 인건비는 그대로 나간다"며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