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로 중국에서 조달해 온 부품 재고가 고갈되면서 현대차가 한국 내 공장 7곳의 가동을 모두 중단한다. 승용차 20종, 트럭·버스 등 국내에서 만들어 온 모든 차종을 생산할 수 없게 된다. 노조 파업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전체 현대차 공장이 멈춰 서는 건 1997년 외환 위기 때 부도 위험에 몰린 만도기계의 부품 공급 중단에 따른 휴업 이래 처음이다. 현대차는 4일 "울산 4공장 포터, 울산 5공장 제네시스 라인이 오늘 가동 중단되고, 이어 5일 울산 1공장, 6일 전주 트럭 공장 등 순차적으로 전체 공장이 휴업한다"고 밝혔다. 휴업 종료일은 10~11일로 잡고 있지만, 중국 내 부품 공장의 가동 중단이 9일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생산 재개는 요원해진다. 이 경우 기아차 등 나머지 국내 완성차 업체 생산까지 중단되고, 이는 다시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국내 수천 개 부품 공장을 멈춰 세우는 연쇄 셧다운(가동 중단)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완성차 연쇄 타격… 이유는

현대차 셧다운을 야기한 '와이어링 하네스'는 자동차의 각종 전자 장치를 연결하는 전선 뭉치로 자동차의 뼈대인 차체에 혈관처럼 내장된다. 부피가 크고 차종별 맞춤 제작이 필요해 완성차 업체들은 재고 기간을 1~2주 정도로 짧게 가져간다. 현대차에 이 부품을 공급하는 유라·경신 등은 한국 업체이지만,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전체 물량의 75%를 생산한다. 현대차는 와이어링 하네스의 대부분을 이 중국 공장들에서 공급받았다. 이번에 중국 부품 공장들이 12일째 멈추면서 전체 생산 라인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쌍용차 이어 현대차까지 생산 중단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중국산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현대차와 쌍용차 등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공장 가동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일부 생산라인이 휴업에 들어간 4일 오후 울산시 북구 현대차 공장에서 오전 근무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현대차뿐 아니다. 쌍용차도 와이어링 하네스 부족으로 이날부터 12일까지 평택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기아차는 이번 주까지는 와이어링 하네스 재고가 확보돼 있지만, 다음 주엔 바닥날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던 한국GM과 르노삼성도 불안하다. 한국GM 관계자는 "GM의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다 해도, 갑자기 미주에서 부품을 가져오기는 힘들기 때문에 중국 공장 휴무가 다음 주까지 이어지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한국 완성차 업체 5곳이 모두 우한 사태 피해자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낮아 당장 생산이 중단되지는 않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주로 멕시코, 일본 업체는 동남아, 유럽 업체는 동유럽 등에서 저가 부품을 공급받는다"며 "인건비·물류비 때문에 중국 의존도를 높여온 한국이 '우한 폐렴'의 타격을 크게 받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초유 위기

이번 셧다운으로 현대차 인기 차종의 물량 대란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신형 그랜저는 2개월, 팰리세이드는 6개월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데, 이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됐다. 지난달 출시한 제네시스의 첫 SUV 모델인 GV80도 출고 지연을 우려한 소비자의 이탈이 우려된다. 현대차는 다음 달 예정돼 있는 GV80의 가솔린 모델 출시와 상반기 중 미국 수출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400만대 생산 붕괴(395만대)에 이어 더 큰 위기에 직면했다. 국내 자동차 생산의 45%(178만대)를 책임진 현대차에 이어 37%(145만대)를 차지하는 기아차 등 나머지 업체까지 생산이 중단되면, 국내 8000여 부품사도 함께 멈춰야 한다. 전후방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장기간 일본·북미 지역 생산을 줄이는 등 큰 피해를 본 적이 있다. 이후 일본 업체들은 중국·한국 등으로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했다. 실제 혼다는 최근 중국 공급망 붕괴로 중국산 브레이크 페달 조달이 어려워지자, 공급처를 동남아 공장으로 옮겼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미·중 무역 전쟁 등 보호무역주의뿐 아니라, 한 지역의 전염병이 전 세계 분업 구조에 충격을 준다는 것은 이번 우한 폐렴 사태로 우리 제조 업체가 새로 배운 부분"이라며 "특히 중국에만 올인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