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문을 연 '청주 가경 아이파크 4단지' 모델하우스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입장 후에도 내부 견본주택 구경을 위해 1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했다. 이날 하루 방문객만 4000여명.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이 아파트 청약에는 107가구 모집에 9576명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 89.5대1을 기록했다. 바로 옆 '청주 가경 아이파크 3단지'에 1년 전 4803명이 청약(경쟁률 5.3대1)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결과다.

지난해 12월 광주광역시 '광주 계림 아이파크 SK뷰' 모델하우스에서 관람객들이 견본주택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이 단지는 683가구 모집에 4만6307명이 몰려 평균 67대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장기 침체를 겪어온 지방 주택 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후 서울 집값 상승폭이 꺾인 것과 달리, 지방은 아파트 매매가격이 오르고 거래량도 살아나고 있다. 건설사의 골칫거리였던 미분양은 줄어드는 추세다. 뚜렷한 호재가 없는 지역에서도 수십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분양 시장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서울 집값 규제에 따른 일시적 '풍선효과'일 뿐, 본격적인 지방 주택 시장 반등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매매가격 상승하고 미분양 줄어

3일 한국감정원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 연속 상승, 지난달 94.4를 기록했다. 2017년 10월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26개월 만이다. 매매가격지수는 2017년 11월을 기준(100)으로 놓고 가격이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방 주택 시장의 반등은 '대·대·광(대전·대구·광주)'의 상승세에 더해, 그동안 지역 경기 위축 등으로 거래량 자체가 급감했던 부산·울산 시장이 살아나고, 창원·청주 등 기타 지방으로까지 주택 구매 열기가 번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선업 불황으로 지역 경기가 위축되면서 집값 하락이 장기화한 울산 주택 가격은 지난해 10월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4개월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지방 미분양도 감소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지방 미분양(4만1595가구)은 지난해 8월(5만2054가구) 이후 4개월 연속으로 줄었다. 전년 동기(5만2519가구)와 비교하면 1만 가구 감소했다.

이런 온기는 청약 열기로 이어졌다. 청주 가경 아이파크 4단지 외에,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에서 분양한 '포레나 전주 에코시티'와 12월 광주광역시에 나온 '광주 계림 아이파크 SK뷰'도 모두 청약 경쟁률이 60대1을 넘었다.

지방 시장에 훈풍이 불자 건설사들은 그동안 미뤄온 분양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3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부터 3월까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3만328가구, 44곳이 분양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39가구) 대비 3배 이상 많은 물량이다. 올해 지방 전체 분양 물량(11만4508가구)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외지인이 이끈 가격 상승, 한계 뚜렷"

지방 아파트를 사들인 사람은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온 외지인이었다. 그 때문에 '지방 부동산 기초체력이 좋아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정부 규제로 지방 원정 투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15개 시·도별 외지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을 분석해보면 지난 12월 기준 15곳 모두 2018년 같은 기간 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부산은 799건에서 3658건으로 4배가량 늘었고 충북은 438건에서 1681건으로 증가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3일 발간한 '외부 수요로 지탱하는 지방 주택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5대 지방 광역시에서 외지인이 해당 지역 주택을 사들인 비율이 전체 거래량의 약 43.4%를 기록했는데, 2019년에는 52.7%로 증가했다. 지난해 5대 광역시에서 팔린 주택의 절반 이상을 외지인이 사갔다는 의미다. 부동산업계에선 이런 거래를 보통 실거주가 아닌 투자 수요로 파악한다.

전문가들은 "외지인 투자자가 대거 발을 빼면 지방 부동산 시장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역 주택시장 훈풍은 지역 내부의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에 의한 단기 상승일 가능성이 크다"며 "인구 유입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유도해 내부에서 주택 수요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