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WHO, 사람간 전염 이어 무증상 감염 가능성 인정
德 무증상 감염자 전파 사례 첫 보고… "방역체계 재평가 필요"
美⋅中 "설사에서도 검출, 호흡기 이외 경로 감염 가능성"
韓, 무증상 감염자 전파 가능성 뒤늦게 인정… "대⋅소변 전염 연구중"

중국·독일·미국 연구팀들이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돼 세계로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우한폐렴)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바이러스 감염 경로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내놓고 있다.

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인 비말(飛沫)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각에선 ‘숨겨진 전파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파경로에 따라 방역대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 거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유입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중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으로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3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가 끝난 2일 24시까지 361명이 사망해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사망자 수(9개월 동안 349명 사망)를 넘어섰다. 사망자수는 하룻새 57명 늘었다. 일일 사망자가 50명을 넘어선 것은 지난달 20일 공식으로 통계를 발표한 이래 처음이다.

현재까지 확진 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 수는 16만3844명이며 이 가운데 13만7594명이 의료 관찰을 받고 있다.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와 후베이(湖北)성 질병예방통제센터 등 여러 기관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최근 게재한 논문을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 초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425명을 분석한 결과, 이 바이러스의 평균 잠복기는 5.2일이며 최장 12.5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우한폐렴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59세이며, 절반 이상인 56%(240명)가 남성이었다.

중국 연구진은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확인했다. 작년 12월에 증상을 보인 환자의 절반 이상(55%)은 화난수산시장을 다녀온 이력이 있다. 그러나 1월 중 확진 판정 받은 환자들 중에서 화난수산시장을 방문한 환자 비중은 8.6%로 떨어졌다. 중국 연구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밀접한 접촉을 통한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초기엔 폐렴 증상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부 환자 중에선 위장 증세를 보인 환자도 있어 이를 중심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보건당국도 사람간 전염 가능성을 이미 인정한데 이어 무증상 감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전염력이 있을 가능성을 거듭 확인했다.

독일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보고됐다. 우한폐렴 확진자(중국인)가 증상이 없는 시기에 독일 출장을 갔다가 직장 동료 3명을 감염시킨 사례가 나온 것이다. 독일 연구진은 "환자의 잠복기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며 "무증상 환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잠재적 원인이라는 사실은 현재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무증상 감염자의 전파 가능성을 뒤늦게 인정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중앙사고수습본부 확대회의 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잠복기 상태에서 감염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복기에서 증상 발현이 되는 환자로 넘어가는 초기 단계 무증상 상태의 경증 환자에게서 감염증이 전파되는 경우도 있어 방역 관리가 한층 더 어렵게 되는 특성이 있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무증상·경증환자 감염성 전파 가능성에 대해 지난달 29일까지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나흘만에 이를 번복했다.

‘후베이성 경유 외국인’의 입국제한 조치와 함께 감염자에 대한 접촉자 방역체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도 무증상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중국 전역 방문자를 대상으로 14일 안에 폐렴 증상은 물론 열이 나거나 기침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모두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우한폐렴 확진환자의 접촉자는 모두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벌금 등 벌칙이 부과된다.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무증상 감염 사례는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최종 확인된 바는 없다"며 "무증상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가 있다. 무증상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측정한다면 그것이 무증상 감염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환자의 대소변이 우한폐렴의 전파경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신종 코로나 환자의 설사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호흡기가 아닌 ‘다른 경로의 전파 가능성’이 언급됐다. 미 워싱턴주 보건부의 전염병학자 스콧 린퀴스트는 1일 "35세 미국인 환자의 대변에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신종 코로나는 호흡기 외에도, 배변을 통해서도 몸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연구진도 대⋅소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바이러스는 사스와 비슷한 단백질 수용체를 갖고 있으며 폐와 대장 등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소변이 바이러스 전파 경로가 될 경우 얼굴에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데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게 해외 연구진의 조언이다. 홍콩대 병리학과 교수 존 니콜라스는 "중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뚜껑이 없는) 쭈그려 앉는 변기를 이용하고,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경우 바이러스 전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대소변에 의한 전파 가능성과 관련, "메르스 때도 설사 증상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확진환자에게 대⋅소변을 비롯해 다양한 검체로 바이러스를 검사 중이다. 대변과 PCR검사를 통해 나오는 것과, 전염 경로로 작용할 것인가에 대해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시간이 지나면 연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