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 판매가 줄어 울상짓던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쇼크로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였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작년 승용차 판매는 2017만대로, 전년 대비 8.5%(187만대) 감소해 20년 만에 최악의 감소 폭을 기록했다. 중국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 전쟁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미·중이 1단계 무역 합의에 도달하자 자동차 업계는 '올해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번엔 우한 폐렴이란 더 큰 악재에 맞닥뜨렸다.

GM의 중국 합작사 상하이GM이 중국 우한에서 운영하는 완성차 공장. 중국의 주요 '자동차 도시' 중 하나인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공장들의 마비 사태가 장기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우한은 GM·혼다·닛산·르노·푸조시트로앵 등이 공장을 둔 중국의 '자동차 메카'로 꼽힌다. 게다가 폐렴 환자의 확산에 따라 우한뿐 아니라 중국 전역으로 '공장 셧다운' 사태가 확산되고 있어 다수 자동차 업체가 "올해 장사는 망한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GM·혼다, 우한 공장 무기한 폐쇄

중국 내수 판매 2위인 GM은 우한에 직원 6000명 규모의 합작 공장(상하이GM)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내 승용차 판매량(205만대)이 전년 대비 24% 감소해 글로벌 업체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은 GM은 올해는 실적 반등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우한 공장이 폐쇄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혼다는 작년 중국차 시장이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장사를 잘한 회사로 꼽혔으나, 이번 우한 폐렴은 피해가지 못했다. 혼다는 작년 중국 판매량이 7.6% 증가(157만대)해 중국 내수 3위에 올랐다. 우한에 있는 합작 공장(둥펑혼다)은 혼다의 글로벌 연매출 11%를 담당하는 주요 거점으로, 혼다는 작년 4월 우한에 제3공장까지 문을 여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혼다 우한 공장도 무기한 폐쇄된 상황이다.

푸조시트로앵은 지난해 중국 공장 판매량이 25만대에서 11만대로 55% 급락, 중국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냈다. 푸조시트로앵의 중국 사업 손익분기점은 18만대로, 회사는 2021년까지 판매량을 25만대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푸조시트로앵의 생산 절반을 담당해온 우한 공장이 폐쇄되면서 계획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푸조시트로앵은 중국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르노그룹도 우한에 2000명 규모의 연산 30만대 공장을 두고 있다. 르노는 우한 폐렴 사태 이전부터 중국 내 판매가 격감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우한에 공장이 없어도 상황이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다. 우한 폐렴 확산으로 공장 가동 중단 지역도 확대되고 있고, 중국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 자동차 판매량도 더 곤두박질칠 전망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도 9일까지 중단

지난해 중국 판매량(91만대)이 22% 급감해 100만대가 무너진 현대·기아차는 9일까지 중국 내 공장을 쉬기로 했다. 현대차는 베이징·충칭·창저우에, 기아차는 옌청에 승용차 공장이 총 8곳 있는데 베이징 1공장, 옌청 1공장은 앞서 작년 초 구조조정으로 아예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총 21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나머지 여섯 공장은 지난해 가동률이 43%에 불과했다. '재고가 남아도는 상황이라 오히려 공장을 잠시 멈추는 게 이득'이란 분석도 있지만, 셧다운이 장기화되면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동반 진출한 100여 부품사는 적자를 넘어 파산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마비 사태로 전 세계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국내 자동차 생산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쌍용차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와이어링 부품의 수급 차질로 오는 4~12일 평택 공장을 쉬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도 중국 공장에서 공급받는 와이어링 부품이 오는 4일쯤 바닥날 것으로 예상돼 대체 납품처를 급히 찾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연휴를 끝낸다고 해도 감염을 우려한 직원들이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바이러스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 한, 중국 공장이 정상화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