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나이키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이커머스 아마존에서 자사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소비자 직거래 판매 방식인 'D2C(Direct to Consumer·DTC)'에 주력하기 위해서다. 이달 1일 취임한 나이키 신임 CEO 존 도나호는 "앞으로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기존 소매업체와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나이키만이 아니다. 앞서 2017년에는 독일 신발 업체 버켄스탁이 아마존에서 철수했고 랄프로렌,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반스 등도 아마존을 떠났다. 2018년부터 아마존에서 시범 판매를 했던 스웨덴 가구 업체 이케아도 최근 시범 판매를 중단하고 D2C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조업체들이 매출이 보장된 거대 유통망을 등지고 D2C를 택한 이유는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서다. 온라인 유통 중계사를 통한 판매로는 브랜드 경험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조품의 범람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직접 판매는 유통사에 마진을 줄 필요도, 복잡한 규칙이나 일방적인 조건을 따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한 발 나아가 오프라인 유통사와의 거래도 중단하고 나섰다. 나이키는 현재 3만 개에 달하는 유통 거래처를 향후 40개 파트너까지 줄일 방침이다. 대신 '나이키 라이브'와 같은 체험형 직영 매장을 늘리고, 자체 모바일 앱 'SNKRS'을 키우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고객 맞춤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셀렉트(Celelct)를 인수했다.

이런 노력으로 나이키의 D2C 매출은 2011년 13.8%(29억 달러)에서 지난해 31.6%(118억 달러)로 뛰었다. 올해는 D2C 비중이 4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키는 소비자가격의 50~60% 수준으로 홀세일(도매) 업체에 제품을 판매하는데, 직접 판매 비중이 늘면 수익성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D2C의 부상은 유통업체엔 달갑지 않은 흐름이다. 특히 나이키와 같이 잘 팔리는 상품(콘텐츠)이 빠지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오는 6월 나이키와 홀세일 계약이 끝나는 국내 슈즈 멀티숍 레스모아의 경우 100여개 매장 중 30% 이상을 폐점하기로 했다. 레스모아에서 나이키의 판매 비중은 30~35%로 알려진다.

백화점과 할인점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한 유통업체 상품기획자(MD)는 "불황으로 신규 브랜드 출시가 주춤해 안 그래도 팔 게 없는데, 이름난 브랜드들이 직접 판매를 위해 매장을 철수하면 장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전엔 적당한 브랜드를 입점시키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직접 현장을 뛰며 단독·자체 브랜드를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소셜미디어의 D2C 판매자에게 손을 뻗기도 한다.

하지만 D2C 전략도 단점이 있다. 직접 구매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의 충성 고객에 국한된 경향이 있다. 즉 새로운 티셔츠를 원하는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 매장만을 찾을 가능성은 작다는 뜻이다. D2C의 시대에도 새로움과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백화점과 같은 멀티 브랜드 소매점을 찾는다. 유통업체들은 끊임없이 ‘발견의 즐거움’을 줘 이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실험은 유통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드스트롬은 체험형 매장인 '노드스트롬 로컬'을 LA와 뉴욕 등에서 운영한다. 오프라인에서 상품을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쇼루밍 소비자를 공략해 연 작은 매장으로, 스타일링, 피팅, 수선, 온라인 구매 상품 픽업 및 반품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오롯이 쇼핑 경험만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됐지만, 이곳의 고객은 기존 백화점 고객보다 2.5배 더 돈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