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위기 돌파를 위해 청정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석유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미래를 대비하고, 기존 사업에 첨단기술을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수년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석권했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엑손모빌, 로얄더치쉘, 셰브론 등은 최근 실적 부진과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 하락, 정제마진 악화 등의 영향으로 주요 석유회사들은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정부와 소비자, 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와 가스산업을 운영하는 이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BP의 전기차 충전시설

이에 주요 석유회사들은 에너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사를 설립하는 등 차세대 에너지 발굴과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BP와 로얄더치쉘, 토탈, 셰브론, 사우디 아람코 5개사가 세운 벤처투자사들의 투자액은 2015년과 2018년 사이 8배 증가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실적 회복과 기업 이미지 개선, 신성장동력 육성이라는 숙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BP·쉘 ‘청정에너지’ 기업에 투자

영국 석유화학기업 BP는 차세대 에너지 기업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 ‘런치패드(Launchpad)’를 지난해 설립했다. BP는 런치패드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원) 규모의 에너지 기업 5개를 키워내겠다고 밝혔다. 앞서 BP가 세운 투자회사 BP벤처스가 외부 유망 에너지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하는 방식이었다면, 런치패드는 향후 BP의 주요 사업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디지털·청정에너지 사업을 육성하는 사내벤처 형태로 운영한다. 런치패드는 현재까지 3개의 기술 기업에 투자했다.

BP 측은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과 기업을 육성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런치패드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굴하고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쉘도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의 50%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연간 10억~20억달러를 풍력·태양광·수소 등 청정에너지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8년부터는 ‘내연기관차 종식’을 대비해 전기차 충전사업에 진출했다. 미국 셰브론도 첨단 에너지 시스템, 청정에너지 기업과 기술에 투자하는 셰브론 테크놀로지 벤처스를 운영 중이다.

벤 반 뷰어든 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7년 실적발표를 하고 있다.

◇"석탄에 투자 안한다" 친환경 기조에 ‘빅오일’도 전략 바꿔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각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내세우면서 ‘빅 오일(Big Oil·글로벌 7대 석유기업)’도 마지못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소수의 환경 운동가들의 반대만 이겨내면 석유사업을 운영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주요 투자자들도 "기업들도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운용사인 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올해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투자전략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삼겠다고 한 점이 대표적이다. 블랙록은 세계적으로 7조달러(약 8109조5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한다. 핑크 회장은 이달 초 투자자들에게 발송한 연례서한을 통해 "발전용 석탄처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서는 자금을 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