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스마트키에서 터치패드·전기차 부품으로 사업 확대

지난 15일 출시한 현대자동차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GV80의 첨단 기능 가운데 하나가 ‘제네시스 통합 컨트롤러(필기 인식 조작계)’다. 다이얼식 기어 바로 위에 있는 살짝 오목한 원반 형태의 부품인데, 원반 안에서 손가락으로 문자나 숫자를 쓰면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목적지를 설정하거나, 전화 발신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다. 복잡하게 버튼이나 내비게이션 화면을 누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운전 중 조작이 간편해질 뿐만 아니라, 입력 장치의 디자인도 세련돼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박종남 모베이스전자 사장이 경기도 수원 모베이스전자에서 현대차 제네시스 GV80에 공급하는 필기인식 조작계 부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 통합 컨트롤러를 개발해 납품하는 업체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차량용 전자 장치 전문 회사 모베이스전자다. 박종남 모베이스전자 사장은 "자동차에 처음으로 탑재되는 터치패드 방식의 스위치를 개발하고 양산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특히 운전자가 편안하게 필기 인식 장치를 사용하고, 기능이 안정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밤낮없이 회사에 머무르면서 최종 제품 개발과 생산에 매달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블릿PC 등 IT(정보기술) 제품과 달리 차량용이다 보니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원반 위에 글씨를 겹쳐서 쓰게 되는 데, 이를 한 자(字) 한 자 따로 인식하게 구분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난관이었다"고 박 사장은 말했다.

해당 기능은 고급형 자동차용으로 개발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박 사장은 "원래 산업용 기계나 상용차 용도로 개발이 시작된 기술이었다"며 "고급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필기 인식 기술이 쓰이게 되는 걸 보면서, 기술이란 게 어떤 방식으로 상용화될 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베이스전자는 차량용 스마트키, 파워 윈도우 및 운전대에 붙는 다기능 스위치, 차량용 전력 제어 장비, 무선 충전기 등의 차량용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스마트키 시스템의 경우 국내 자동차 회사 대상 납품 물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스위치, 전력 제어 장비, 무선 충전기 등의 부품도 관련 업계 1위로 평가 받는다.

현대차의 오랜 협력사로 전체 매출의 70%가 현대차에서 발생한다. 기아차,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업체와 GM, 볼보, 포드, FCA, 상하이차 등 해외 업체에도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 대상기업에 뽑혔고, 2018년까지 6년 연속 품질경쟁력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차가 지난 15일 출시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 운전석 내부와 제네시스 필기 인식 조작계가 탑재된 모습.

모베이스전자의 이전 사명(社名)은 서연전자였는데 지난해 9월 휴대폰 케이스 및 전자부품 회사 모베이스(101330)에 인수됐다. 자동차 부품회사 서연이화(200880)등과 함께 서연그룹 계열사였는데, 지난 몇 년 간 공격적으로 설비를 늘렸던 중국에서 매출이 꺾이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7180억원, 영업이익은 17억원이었다. 2017년 14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것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재무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모베이스전자가 지난해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는 30년 만기 전환사채(CB) 200억원어치를 사모펀드 NH PE와 오퍼스PE는를 상대로 발행한 것도 해외 투자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사모펀드가 30년 만기 채권을 산 이유는 자동차에서 전자 부품 비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모베이스전자가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베이스전자가 주력 제품으로 만들던 스마트키나 차량용 스위치 제품은 영업이익률이 높은 품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량 내에서 전자부품 사용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인 모베이스전자에 사업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전기차용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부품이다. 모베이스전자는 최근 SK이노베이션(096770)과 BMS 납품 계약을 맺었다. 폴란드 현지 공장에서 BMS를 생산해 SK이노베이션의 헝가리 공장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BMS는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수십 내지 수백 개의 배터리 셀(cell)이 직렬 또는 병렬로 연결돼 전기를 공급한다. BMW i3의 경우 96개의 배터리셀이 쓰인다. 이 배터리셀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뽑아내는 게 BMS의 역할이다. 지금까지는 독일 컨티넨탈 등 외국 업체들이 BMS 시장을 장악해 왔었다.

"자동차 내 전자 부품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통합 제어하는 기능의 부품을 만들어왔었는데, 그 기술을 좀 더 고도화시켜 BMS까지 이어지게 됐다"며 "지난 몇 년 간 연구개발(R&D) 투자가 성과를 내게 된 것"이라고 박 사장은 설명했다.

모베이스전자 직원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새 모델에 쓰일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차량 내 스마트폰 충전 장치, 통합 차체 제어 시스템(IBU·integrated body unit) 등에서도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박 사장은 "차량 내 스마트폰 충전 장치 관련한 기술력은 모베이스전자가 최고 수준"일며 "일본 업체가 나서서 기술 제휴를 요청할 정도"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 사장은 "본사 연구 인력만 250명에 달하고 40억원을 들여 설치한 전파 암실(EMC) 등 연구 개발 설비도 충실하다"며 "꾸준히 R&D(연구개발) 투자를 해오던 것이 전자 부품 사용 확대 추세에 맞춰서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모베이스전자는 2017~2018년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출액의 5.5%를 R&D에 투입했다. 특허 및 실용신안 보유 건수는 2014년 269건, 2016년 348건, 2018년 612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모베이스전자가 최근 새로운 먹거리로 R&D에 나선 분야는 차량용 센서다. 초소형 초근거리 레이더(USRR·ultra short range radar) 시스템을 개발해 주차보조시스템, 후방 자동긴급제동, 개방 충돌 경보 시스템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기존 초음파 기반 센서를 대체하는 것으로 사업 기반을 닦은 뒤, 자율차용 센서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박 사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