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바현에 있는 의료 법인 '지하루(千陽)회'는 지난해 3월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았다. 파산 이유는 '일손 부족'. 혈액 투석 클리닉인 '사쿠라 클리닉'을 운영하던 이 회사는 2018년 3월 '사쿠라 클리닉 나리타'를 신설해 사업 범위를 가정 방문 진료 및 유료 양로원으로 넓혔다. 그러나 당장 일할 의사와 직원을 구하지 못해 클리닉 운영에 차질을 빚었고, 결국 신사업 차입금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 확장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해 11월 파산 절차에 들어간 미야기현 운송 회사 '센토(仙杜)물류' 역시 일손 부족이 문제였다. 해상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대형 트레일러를 운전할 기사를 구하지 못해 매출이 쪼그라들면서 도산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처럼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일할 인력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부쩍 늘고 있다. 2045년이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 국가가 되는 우리나라에서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손 부족으로 문 닫은 日 회사 426곳

최근 일본 시장조사 업체 '도쿄상공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손 부족 도산'이 426건을 기록해 2013년 통계 집계 후 처음으로 400건을 돌파했다. 이는 2018년(387건)보다 10.1% 증가한 수치다.

일러스트=김성규

일손 부족 도산은 기업이 경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직원이나 경영자를 확보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도산 사유를 세세히 보면 직원의 이직이나 독립 등 핵심 인력 유출에 따른 '직원 퇴직형 도산'이 44건으로 전년보다 83.3% 늘었다. 직원을 구하지 못해 영업을 수행할 수 없는 '구인난형 도산'도 전년보다 32.3% 늘어난 78건을 기록했다. 주로 젊은 층이 찾지 않는 건설업이나 운수업, 보건 복지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력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인건비를 올리다 버티지 못한 '인건비 상승형 도산'은 34건으로 전년보다 30.8% 늘었다. 반면 그동안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했던 '후계자 없음형 도산'은 270건으로 전년보다 2.8% 감소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도산하는 경우는 감소한 반면, 다른 유형의 도산이 늘고 있는데 특히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생산 인구 매년 64만명 줄어… 구직자당 일자리 수 1.6

이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된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기업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 추계에 따르면, 일본의 생산연령인구는 2015년 7728만명에서 2065년 4529만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약 64만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일할 사람은 감소하는데 일본 경제는 소폭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남아도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일본의 유효 구인 배율은 1.57배에 이른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가 1.57이라는 뜻이다. 일본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전국 기업 단기경제관측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이 일손 부족을 느끼는 지수는 대기업이 -21포인트, 중소기업이 -34포인트를 나타냈다. 마이너스 폭이 클수록 일손 부족을 느끼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대기업까지 구인난을 겪으면서 채용 활동에 적극 나서자 직원 채용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할 수 없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인력난에 따른 도산이 줄을 잇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도산도 11년 만에 증가세… '중소기업 大폐업 시대'

일본 중소기업청은 2025년이면 전체 중소기업의 3분의 2나 되는 245만 기업의 경영자가 70세를 넘고, 이 중 절반이 넘는 127만 곳은 후계자를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이 모두 폐업할 경우 일자리 650만개가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은 22조엔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일본 언론들이 '중소기업의 대(大)폐업 시대'가 도래했다고 우려할 정도다.

지난해 일본 전국 기업 도산 건수는 전년 대비 1.8% 증가한 8383건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을 받은 2008년 이후 11년 만에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빚 1억엔 미만의 소규모 도산이 6288건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중소기업 인력난이 극심한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일손 부족으로 인한 도산이 수년 내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중소기업 가업 승계 요건을 완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노동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늘려 일손 부족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