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준법 경영을 위해 설치하는 준법감시위원회가 구성됐다. 승계와 노조 활동 등 그동안 삼성에 대해 제기됐던 문제를 포함해 회사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아 조사하고, 감시위 요구나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성역 없고 강력한 감시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김지형(전 대법관) 초대 위원장은 9일 자신이 대표 변호사인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 인선(人選)과 앞으로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 이 같은 위원회의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는 이르면 다음달 초 공식 출범한다.

◇"노조·승계 문제도 예외 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준법 감시자·통제자가 돼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준법 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활동 범위는 법 위반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거래 분야, 뇌물수수나 부정청탁 등 부패 행위 분야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에서 법 위반 리스크 관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는 앞으로 계열사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주요 의결이나 심의사항에 법을 위반할 위험 요인이 없는지 사전 모니터링이나 사후검토를 한다. 여기서 계열사는 삼성전자·물산·생명·SDI·전기·화재 등 주요 7개사로,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이 회사들 CEO는 지난달 17일 삼성 사장단 회의를 열고, 별도의 준법감시기구를 신설하기로 뜻을 모았다. 참여하는 계열사는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내부, 특히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고 조사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김 위원장은 밝혔다. 법·위반 리스크를 사전·사후에 들여다보고 리스크를 인지하면 조사하고, 법 위반을 확인하면 시정·제재와 재발 방지 방안을 회사에 요구한다.

김 위원장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총수(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싶어 애초에 완곡하게 거절했었다"며 "무엇이 계기가 됐든 삼성이 먼저 벽문(壁門)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 인사들로 꾸려진 준법감시위

준법감시위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의 외부 위원과 삼성 내부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총괄 고문으로 구성된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 구성에 대해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질환 관련 조정위원회에서 만나 실랑이를 많이 했던 이인용 고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와 초면"이라며 "법조, 시민사회, 학계 분야에서 전문성과 대표성 등을 고려해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참여를 권유했고, 어렵게 수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에는 진보·친여 성향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김영란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진보 성향 '독수리 오형제'로 불릴 정도로 사회적 약자 편에 선 판결을 많이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 인사인 고계현 사무총장은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냈고, 권태선 대표는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과 편집인 등을 거쳤다.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은 검찰총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될 정도로 현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