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첫 출시 후 당일 매진 행렬 스타벅스 '럭키백'
작년 7시간 만에 완판… 올해는 오후 1시 기준 판매율 80%
가격 인상·구성품 부실 논란… "럭키백 아닌 '재고백'"

"스타벅스 럭키백 구매하려면 줄 선다고 해서 좀 일찍 출근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살 수 있었네요."

직장인 이수연(32) 씨는 이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마쳤다. 이날부터 출시되는 스타벅스 럭키백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올해 처음 럭키백 구매에 나선 이 씨는 제품 구매를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이른 출근길에 나섰다. 오전 6시 50분쯤 여의도 내 직장 인근 스타벅스에 도착했지만 예상과 달리 럭키백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씨는 해당 매장에서 4번째로 럭키백을 구매했다.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소재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소비자가 이날 출시된 스타벅스 럭키백을 구매하고 있다.

첫 출시 직후 ‘당일 완판’ 행렬을 이어온 스타벅스 럭키백의 인기가 사그라드는 걸까. 9일 오전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2020년 럭키백’은 이날 오후 1시 기준 판매율이 80%에 그치고 있다. 럭키백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판매 개시 7시간 만에 전 물량이 매진된 바 있다.

럭키백 판매가 시작된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여의도 일대 스타벅스 매장을 찾았다. 매장 입구에는 럭키백 판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매장 내에는 12개 내외의 럭키백이 진열돼 있었다.

스타벅스 여의도점에서는 이날 6시 30분 개점과 동시에 럭키백 2개가 판매됐다.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매장에서 럭키백을 구매한 이 씨는 "집 근처 매장이 붐빌 것 같아 일부러 직장 근처로 왔는데 (럭키백을 구매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인근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장을 방문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입구의 럭키백 진열대를 그대로 지나쳐 음료만 구매했다.

다만 럭키백을 구매하려는 이들의 발길은 시간 차를 두고 꾸준히 이어졌다. 여의도역R점의 경우 이날 오전 9시 6분쯤 준비된 럭키백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럭키백은 2007년부터 스타벅스에서 해마다 선보인 한정판 기획상품(MD)이다. 큰 포장 박스에 텀블러, 머그잔, 에코백 등 품목이 담겨 제공된다. 박스별 구성품이 다르고 구매 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럭키백은 총 1만7000세트가 준비됐다. 럭키백 전용 신상품으로 제작한 블랙 컬러의 소가죽 카드 지갑을 포함해 지난 시즌 출시한 텀블러, 머그, 워터보틀, 머들러, 코스터, 음료쿠폰 등 10개 품목으로 구성했다. 1000개의 럭키백에 한해서는 음료 쿠폰 4매가 추가로 포함됐다. 1인당 1개씩 선착순 판매하며 한 세트당 가격은 6만8000원이다.

2020 럭키백 가방이 스타벅스 매장에 진열돼 있다. 페트(PET) 소재를 재활용한 실로 제작한 친환경 소재 가방이다.

특히 올해 럭키백은 1회용 포장 박스가 아닌 페트(PET) 소재를 재활용한 실로 제작한 가방 형태의 친환경 멀티백에 담아 제공했다. 멀티백 속 기본 박스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스타벅스 로고 외에는 별도 디자인 인쇄를 하지 않은 흰색 종이 박스를 사용하고, 상품 개별 포장도 비닐 포장재 감축을 위해 에어캡 대신 종이 소재를 사용했다.

직장인 박모(42) 씨는 "아내의 부탁으로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려 럭키백을 구매했다"며 "올해 럭키백 가방이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외관은 녹즙이나 유제품 배달용 가방 같은 느낌도 든다"며 웃었다.

럭키백은 ‘스타벅스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당일 매진 기록을 이어왔다. 한때는 럭키백을 구매하기 위해 출시 전날부터 매장 앞에서 밤샘 캠핑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날도 럭키백 판매 시작과 함께 소셜미디어(SNS)에는 일부 매장에서 럭키백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을 인증하는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2020 럭키백 판매’ 글이 잇따르고 있다.

9일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럭키백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결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스타벅스의 ‘한정판’ 마케팅 전략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한정판을 소유하고 이를 과시하면서 우월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제품에 열광하는 현대 소비 트렌드가 맞물린 것도 인기 요인이다.

그러나 스타벅스 럭키백 가격 인상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3만원대로 처음 출시된 럭키백 가격은 꾸준히 인상됐다. 2011년 3만8000원에서 2012년 4만2000원, 2013~2014년 4만5000원, 2015년 4만9000원, 2016년~2017년 5만5000원, 2018년엔 5만9000원에 판매됐다. 지난해에는 6만3000원으로 처음 6만원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그보다 5000원 오른 6만8000원에 판매됐다. 출시 초기에 비해 2배가량 오른 것이다.

럭키백 구성품 대부분이 신제품이 아닌 이전 시즌 이월 상품인 점에 대해 ‘재고 떨이용’ 마케팅이란 비판도 나온다. 실제 이날 직접 구매한 럭키백에 제공된 텀블러는 대부분 2018년 출시 제품들이었다.

9일 직접 구매한 스타벅스 럭키백 구성품.

이날 럭키백 구매를 인증한 한 SNS 이용자는 "올해 가격이 또 오른 럭키백은 구매 6년 차 만에 가장 실망스러운 구성이었다"며 "더이상 줄 서는 이가 없을 정도로 내용 구성물을 ‘재고백’으로 만드는 스타벅스는 고민해야 한다. 브랜드 가치는 직접 높일 수도, 직접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계속되는 논란 속에 럭키백 열기도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럭키백 판매율은 70%, 오후 1시 기준으로는 80% 정도에 그쳤다. 판매 개시 직후 완판을 기록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오후 1시 기준 완판 기록을 세웠던 것에 비해서도 판매 속도가 느리다 .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관계자는 럭키백 논란과 관련해 "올해는 스타벅스 럭키백 구성품 가짓수를 7개에서 8개로 늘렸고, 그중에서도 텀블러류를 3종에서 4종으로 추가했다"며 "여기에 럭키백 전용 상품으로 출시한 소가죽 지갑, 일회성 종이박스 포장지 대신 가방으로도 활용 가능한 실용적인 멀티백 등을 함께 구성해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개별 상품으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판매가 대비 평균 2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