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참여기구인 '청소년특별회의'는 지난해 12월 6일 한 해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며 정부에 건의할 28개의 정책 과제를 선정했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교육 활성화였다. 청소년 특별회의 경제팀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제3금융권, 금융상품 범죄가 횡행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청소년 생활 경제교육 매뉴얼이 없다"라며 금융교육 의무화를 교육부에 건의했다. 일부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일회성·이론 중심 교육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체험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건의였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금융교육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청소년들의 건의에 '불수용' 판정을 내렸다. 청소년특별회의의 다른 정책 건의는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금융교육 의무화는 외면했다. 정책건의에 참여한 10대 청소년들은 "지금도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불법사금융이나 불법 도박의 길로 빠지고 있다"며 "안전을 위한, 미래를 위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 청소년 금융교육 좌담회에 박건(왼쪽부터), 홍승희, 정단비, 윤선재 학생이 참석했다.

조선비즈는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금융교육 의무화 정책건의에 참여한 4명의 청소년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세종시에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돌아 서울 광화문의 조선일보미술관 1층에 모였다. 고등학교 3학년인 윤선재(18·부산공업고)군과 박건(17·퇴계원고)군, 양지고 1학년에 재학 중인 홍승희(16)양,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인 정단비(17)양까지 모두 4명의 10대 청소년이 왜 금융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건(박) - 10대 학생들 중에도 불법사이트에서 스포츠 도박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광고를 통해 접하거나 친구에게 소개받는 식으로 사이트를 알게 돼서 빠지는 경우다.

윤선재(윤) - 꽁머니(공돈)를 만원씩 주는 식으로 학생들을 꾄다. 학생들이 한다고 해서 작은 규모로 하는 게 아니다.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수백만원을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불법사이트이다 보니 이겼는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홀짝이나 마리오라고 부르는 사행성 도박도 많다.

홍승희(홍) - 불법도박 문제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심각하다. 학교에서도 학교폭력보다 불법도박을 더 문제라고 보고 학생들을 단속할 정도다. 실제로도 그렇다. 불법도박은 결국 학교폭력으로 이어진다. 불법도박에서 돈을 잃으면 그 돈을 메꿔야 하다보니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도박문제로 상담을 받은 청소년 수는 2015년 168명에서 2018년 1027명으로 급증했다.

정단비(정) - 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려면 경제활동이 필수적인데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서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불법도박을 하거나 소액대출을 쓰다가 제3금융권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부동산 문제에 청소년들도 관심이 많다. 고3이라 이제 곧 학교를 졸업하는데 하나의 꿈이 있다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봐도 대학에 진학하면 자취도 해야 할 텐데 전월세 계약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하는데 기초적인 경제 개념부터 다시 찾아봐야 한다. 월세나 전세, 보증금의 개념을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 보증금을 왜 내야 하냐고 되묻는 친구도 있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할 때 4대 보험을 제하는데 4대 보험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 돈을 떼어간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4대 보험을 안주는 아르바이트만 찾는 경우도 있다.
 
- 모의고사 시험을 봤는데 경제와 관련된 지문이 나왔다. 그때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모의고사나 수능에 대비하려고 따로 경제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DLS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는데 올해 뉴스에 DLS라는 용어가 많이 나오는 걸 놀라기도 했다. 주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적금이나 예금 상품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부모님을 통해 배워야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직접 찾아서 이해하려고 하는 건 쉽지 않다.

- 학교 안에서 안전교육도 하고 인권교육도 하는데 금융교육은 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도 경제 파트를 배운 적이 없다. 교과서에는 있는데 시험 범위에 경제 파트를 넣으면 학생들이 힘들어한다고 선생님이 시험 범위에서 제외했다. 올해 수능시험을 봤는데 사회탐구 선택과목에서 경제를 고르지 않았다. 경제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 고3이 끝나가는데 영어 지문은 해석해도 정작 사회 나가서 필요한 근로계약서는 못 읽는 청소년이 많다. 자율적으로 금융교육을 하다보니 학교나 선생님에 따라서 교육을 하는 곳도 있고 하지 않는 곳도 있다. 학교별, 지역별로 편차가 생기다보면 단순히 교육 격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간 뒤에 경제적인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교육을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경제나 금융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필요한 금융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학교에서 충분히 교육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

금융교육 좌담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금융에 대한 지식 부족이 사행성 도박에 이어 학교폭력으로도 이어진다고 했다.

- 초등학생 때 학교에 금융회사 직원이 와서 특강을 한 번 해준 적은 있다. 올바른 소비법, 잘못된 경제활동 사례 등을 배웠다.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에 비슷한 교육을 찾아봤는데 집 근처에서는 배울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었다.

- 학교 밖 청소년들은 기회가 더 적다. 꿈드림센터라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지원 기관이 있다. 여기서는 다양한 직업체험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융교육으로 볼 수 있는 건 전혀 없다.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학교 밖에서는 금융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다.

- 주방보조도 하고 수영장 가드도 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 활동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하지만 모은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조언을 받은 적은 많지 않다. 출판 쪽 일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경제 분야 책을 쓴 작가를 만나서 잠깐 조언을 받은 적은 있다.

- 한 번에 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중간중간 반복적으로 교육을 해주는 게 효과적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번,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번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현실적이다.

-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은 고입, 대입이 끝난 뒤에 한 달 정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기가 있다. 현장학습으로 시간을 때우거나 학교에 나와도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보내기 마련이다. 이 때를 금융교육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게 어떨까 싶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 달,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한 달 정도씩을 교육하면 되지 않을까.

- 올바른 소비 습관이나 금융생활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려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게 필요하다.

- 학교 교육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은 칼럼이나 정보를 언론사가 주기적으로 연재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기 쉽게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

- 채권 투자를 해보고 싶다. 국채에 투자하면 부도가 나지 않는 한 돈을 잃지 않는다고 배웠다. 고수익까지는 아니어도 적절하게 수익을 올리고 돈을 잃을 일도 없으니 좋지 않을까 싶다.

- 채권 투자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익은 낮아도 안전하다고 들었다. 인터넷에 채권 투자 방법을 검색했지만 와닿는 설명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채권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려운 것 같지만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청소년특별회의가 올해로 16년이 됐다. 청소년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학생 스스로 우리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