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인근. 3번 출구를 나와 5분 정도 걷자 폭 10여m 도로를 끼고 양옆으로 각종 소규모 식료품 가게 20여 개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뒤편에는 지은 지 30년은 넘어 보이는 낡은 저층(低層) 주택이 모여 있었다. 이곳은 원래 뉴타운 예정지였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재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최근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가로주택 정비사업'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말 동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고,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2023년 7월이면 낡은 주거지(3356㎡)가 지하 4층~지상 29층, 2개 동, 156가구 규모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마치고 2017년 입주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 '다성이즈빌'. 3층 연립주택이 7층 아파트로 변신했다. 최근 재건축·재개발이 어려운 소규모 저층 주거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 정비사업 참여가 늘고 있다.

최근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는 가로주택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지만, 가로주택 정비사업 규제는 풀어주는 추세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이란 도로와 붙어 있는 노후 저층 주거지의 주택들을 헐고 그 자리에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정비 사업이다. 길과 길이 만나는 모퉁이 위치여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통상 재건축 사업이 평균 10여 년 걸리는 것과 달리 이 사업은 3~4년으로 짧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사업비의 50~70%를 저렴한 이자로 빌릴 수 있다.

규제 완화로 사업성 크게 높아져

정부는 가로주택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2018년 '빈집 및 소규모 정비사업 특례법'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달 '12·16 부동산 대책'에서 가로주택 정비사업 지원책을 추가로 꺼내들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도 가로주택 정비사업 면적이 기존 1만㎡에서 2만㎡로 두 배 넓어진다. 정비 후 가구 수도 기존 250가구에서 500가구로 늘어난다.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최대 암초로 떠오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피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규제 완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체 가구 수의 10~20%는 임대주택으로 채워야 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공동사업자로 참여하는 등 공공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같은 인센티브에 힘입어 정부 규제에 막힌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이 하나둘 가로주택 사업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조합 설립 기준으로 현재 전국 111개, 서울에서만 48개 가로주택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사업 추진을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곳까지 합하면 98개로, 2018년(45개)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소규모 정비사업 전문기업 수목건축의 서용식 대표는 "서울은 상대적으로 땅값·집값이 비싸 사업 규모가 작아도 분양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다"며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 지원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괜찮은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2·16 대책에 포함된 인센티브가 가시화되면 가로주택 정비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건축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지난 2018년부터 부활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피할 수 있어 집값이 비싼 강남권에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감 끊긴 대형 건설사들도 관심

서울 가로주택 정비사업장에서는 최근 시공사 선정이 한창이다. 뉴타운에서 해제된 성북구 장위 15-1구역과 장위 11-2구역 등이 곧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장위 11-2 구역은 현대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현대건설은 앞으로 이 일대에 나올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꾸준히 수주하겠다는 계획이다. 강남·서초구 재건축 밀집 지역을 브랜드 타운으로 만들기 위해 건설사들이 경쟁하던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이 밖에 서초구 낙원·청광연립(자이S&D), 중랑구 면목우성(성호건설), 송파구 '송파101번지'(신동아건설) 가로주택 정비사업장에서 최근 시공사를 선정했다.

최근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이 규제로 인해 잇달아 제동이 걸리며 대형건설사들이 가로주택 사업 참여를 적극 검토 중인 점도 호재다. GS건설은 자회사인 자이 S&D를 통해, 대림산업 역시 자회사 고려개발과 삼호를 통해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이 재건축·재개발의 대체재가 되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사업 수익이 크지 않고, 규제 완화 효과를 누리려면 '공공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만큼 개발 이익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기업인 LH와 공동으로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 절차가 늘어날 수 있고 분양가 산정 등의 절차에서도 조합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 확대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실수요자들이 여전히 대단지 아파트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소규모 나 홀로 아파트가 공급 확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로주택 정비사업

도로를 끼고 있는 노후 주거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소규모 정비 사업.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행정 절차가 간편하고 규제도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8년 '빈집 및 소규모 정비사업 특례법'을 만들었고, 지난해 12·16 대책을 통해 관련 인센티브도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