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각) 미국 LA시 유니언역. 우리의 서울역에 견줄 수 있는 환승 거점인 이곳 공영 주차장에는 현대차의 '공유 차량'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5대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현대차가 미국에 설립한 '모션랩'이 시범 운영 중인 '모션 카 셰어'다. 'mocean'이라고 적힌 이 차들은 한국의 차량 공유 앱 '쏘카'처럼 스마트폰 앱 '문 열기' 기능으로 문을 열고, 요금도 자동 결제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남성 스티븐씨는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어바인에 사는데 LA 친구를 만나러 올 때 기차 타고 내려 모션을 탄다"며 "시간당 12달러로 우버(약 60달러)나 집카(Zipcar·약 25달러)보다 싸 만족스럽다"고 했다.

현대차는 현재 LA 주요 환승역 4곳에서 15대를 운영 중이지만, 올 1분기 내에 100대로 '프리 플로팅(free-floating·공간 제한 없이 도로에서도 자유 픽업·반납)'을 개시하고 연말까지 300대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 차량 공유 시장에서 존재도 없었던 현대차는 LA시의 '모빌리티(이동 편의) 혁신' 파트너로 선정되며 LA 차량 공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현대·기아차는 작년 11월 모빌리티 실험을 전담할 모션랩을 설립한 후 빠른 속도로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차량 공유 사업 외에도 로보택시, 공유 버스 등 혁신 모빌리티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서울 아닌 LA를 혁신 테스트베드 삼는 현대차

LA시는 2028년 LA올림픽을 앞두고 '교통사고·배출가스 제로(0)'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업체와 협업해 이동 편의 서비스와 친환경차를 확대하고 있는데 지난달 현대차를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한 파트너로 선정해 공영 주차장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완성차 업체 중 LA시 파트너가 된 건 현대차가 유일하다. 디트로이트에 본사가 있는 미국 회사 GM·포드 등과 달리 LA 근교에 미국법인을 둔 현대차는 LA시의 전략에 맞춰 적극적인 공세를 벌인 끝에 파트너가 됐다. 현대차가 보유한 준중형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등 차량 공유에 적합한 합리적 가격의 친환경차도 경쟁력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설립한 모빌리티 사업 법인 ‘모션랩’의 데이브 갤런 전략담당 상무가 전용 앱을 이용해 공유 차량 운전석 문을 열고 있다(왼쪽 사진). 갤런 상무가 운전석에 앉은 고객에게 차량 공유 서비스인 ‘모션 카셰어’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모션랩은 조만간 LA에서 노면 공영주차장 아무 곳에서나 픽업·반납을 할 수 있는 ‘프리 플로팅’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향후 LA시와 차량 공유뿐 아니라 고정 노선이 없는 수요 응답형 버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도심 항공기, 자율주행 셔틀 등 핵심 모빌리티 혁신 실험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이 아닌 LA시를 '혁신의 주요 테스트베드'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헌택 현대차 상무는 "대중교통과 도시 운영 체계를 바꾸는 모빌리티 혁신에서 지자체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며 "협업 의지가 강하고 먼저 준비가 되는 지자체를 테스트베드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7일 미국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 박람회인 CES에 서울관을 차리고 서울시장 최초로 참석할 예정이다. 홍보도 중요하지만 규제 개혁과 혁신 산업 지원을 통해 앞서 나가고 있는 해외 지자체들의 실력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빌리티 혁신은 '지자체 의지'가 중요

현대차가 LA에서 하는 차량 공유 사업은 국내에선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규제도 규제지만 반(反)대기업 정서와 택시·렌터카 등 기존 업계의 반발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넓은 영토에서 다양한 업체의 경쟁 구도가 확보된 미국과는 달리, 좁은 한국 시장에선 현대차가 자동차뿐 아니라 차량 공유까지 독과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은 지나친 규제로 혁신 산업 자체를 싹부터 트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현대차가 LA에서 시도하려는 '프리 플로팅' 차량 공유는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쏘카 같은 기존 차량 공유 업체들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렌터카 사업자는 차고지 등 주차 공간을 자기 소유로 해야 한다는 법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대차는 국내에선 직접 차량 공유 시장에 진출하기보다, 서비스 업체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우회적 방식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가 국내에 설립한 '모션'은 렌터카 업체들에 실시간 차량 관리 시스템을 제공, 단기 차량 공유 사업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또 지자체나 플랫폼 업체에 '수요 응답형 버스·택시'를 위한 실시간 배차 시스템을 지원한다. 지난달 인천시와 손잡고 영종도에서 시작한 수요 응답형 버스, 올 상반기 은평뉴타운에서 진행할 수요 응답형 택시가 이런 형태다. 차두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 박사는 "한국은 정부가 지나치게 산업을 통제하다 보니 다양한 신기술과 서비스 혁신이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럴 때일수록 지자체의 의지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