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유럽 3강 구도… 2030년 AI 경제효과 1경2400조원
日 이어 한국도 가세… 전문가 "기업이 주체가 되도록 규제 완화해야"

인공지능(AI) 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의 경쟁이 새해들어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술 기업은 물론 미국, 중국, 유럽 등 각국 정부까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며 민관(民官)이 함께 ‘AI 헤게모니’를 쥐려 안간힘을 쓰는 기술 전면전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어서다.

AI는 자동화, 최적화를 위한 필수 도구이자 자율주행차, 모빌리티(이동 수단), 헬스케어(의료),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기반 기술로 꼽힌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고 군사력 증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픽사베이

전문가들은 2020년이 AI 기술 패권을 좌우할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AI 기술 대중화를 앞당길 5G(5세대)통신 보급이 올해 본격화되는 가운데 AI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한번 경쟁에서 밀려 격차가 벌어지면, 향후 추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스탠퍼드대에 따르면 AI 학습에 활용된 컴퓨터 연산 용량(computational capacity)은 2012년 이후부터 급격하게 증가해 이미 ‘무어의 법칙(2년마다 반도체 성능이 두 배 개선)’을 뛰어넘었다.

◇미·중·유럽 3강 구도… 2030년 AI 경제효과 1경2400조원

1일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 연구소(Human-Centered AI Institute, HAI) ‘AI 인덱스 2019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8년 사이 출판 과정(동료 평가, peer-review)을 밟은 AI 논문은 30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중국의 약진이 눈에 띈다. 중국의 AI 논문 출판 건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2006년에 이미 미국을 제쳤다. 최근엔 유럽마저 추월한 채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논문 출판 건수 증가율이 28%에 이른다.

미국, 유럽, 중국 AI 논문 출판 건수 추이.

다만 논문 인용 건수를 반영한 ‘상대적 피인용 지수(FWCI, Field Weighted Citation Impact)’ 기준으론 미국이 중국에 여전히 50% 앞선다. 미국, 유럽, 중국이 3강 구도를 형성하며 엎치락뒤치락 팽팽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3강 구도는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이뤄졌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17년 AI 비전을 선언하고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분야 국가대표 기업으로 각각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지정, 다양한 지원책을 펴고 있으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2019년 2월 AI 이니셔티브에 서명, 연구·개발(R&D)과 인재 확보를 위한 아낌 없는 투자를 약속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까지 AI 분야에 15억유로(약 2조원)를 쏟아붓겠다고 공언했고, 제조업 강국 독일과 영국 역시 국가 전략을 수립해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민관의 꾸준한 협력을 바탕으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온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AI 효과로 2030년까지 북미와 중국, 북유럽의 GDP가 26.1%, 14.5%, 9.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간 북미와 중국의 GDP 증가액을 합치면 10조7000억달러(약 1경2400조원)에 달한다.

일본도 뒤질세라 정부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AI와 ‘5G’ 규격 도입 등 현지 경제성장을 돕는 ‘디지털 뉴딜' 예산으로 9550억엔(약 10조5000억원) 이상을 배정하기로 했다. 앞서 2019년 3월엔 아베 신조 총리가 위원장으로 겸직하고 있는 통합과학기술혁신회의가 매년 AI 전문인력 25만명 배출 계획을 내놓았다.

AI 기술로 인한 경제 효과를 나타낸 도표. PwC는 AI 효과로 2030년까지 북미와 중국의 GDP가 26.1%, 14.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가세… 전문가 "규제 완화해야"

우리 정부도 지난해 12월 17일 'AI 국가 전략'을 발표하는 등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새해 신년사에서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AI 강국의 길을 개척하겠다"며 "정보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민 누구나 AI를 배우고 활용할 교육 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AI 개발자와 기업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정부 차원의 AI 전략이 늦게 나온 시간차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기업이 AI 혁신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규제 완화 환경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연구에 필수적인 데이터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묶여 있으며 모빌리티 업계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AI와 5G 같은 인프라가 탄탄하게 깔려도 규제 탓에 기업들은 원격 의료 같은 혁신을 상용화하기 힘들다.

데이터 활용을 돕기 위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결국 통과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삼성전자(005930),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AI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선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인공지능연구원(AIRI) 원장을 지낸 김진형 중앙대 소프트웨어대학 석좌 교수는 "원격 의료와 차량 공유를 막다간 다 같이 폭삭 망할 수 있다"며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글로벌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