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3일 중국 장쑤성(江苏省) 창수(常熟)시에서 열린 수소버스 운행 기념식. 인근 쑤저우(蘇州)에 본사가 있는 버스회사 하이거가 만든 수소버스 20대를 창수 시내버스 노선에 처음 투입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이날 행사의 실질적 주인공은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였다.

수소버스에서 엔진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인 수소연료전지를 도요타가 만들어 납품하기 때문이었다.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시에서 2019년부터 운행 중인 수소버스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도요타는 수소차 시장 공략을 위해 ‘도요타 인사이드’ 전략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도요타가 수소자동차 전체(완성차)를 만들지 않고, 수소연료전지와 연료전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관리하는 제어기술을 중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체에 공급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는 도요타의 수소차 전략을 "도요타의 기술을 사용해서 중국 수소차 시장을 공략하는 거점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미국 인텔이 대만 전자부품 회사들에 자사의 CPU(중앙처리장치)를 사용한 마더보드(PC에서 CPU와 메모리반도체 등이 결합된 핵심 부품)를 만드는 방법을 이전해 PC 시장을 석권한 것과 유사하다. 도요타가 중국 기업에 수소차 핵심부품인 연료전지를 공급해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소차 시장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도요타는 중국 버스회사 하이거와 하이거의 모기업인 킨롱(金龍)자동차그룹 뿐만 아니라 중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이치자동차그룹(一汽·FAW), 광저우자동차그룹(广州汽车·GAC)과도 비슷한 방식의 제휴를 했다.

도요타가 완성차 업체의 비즈니스모델을 버리고 중국 자동차 업체들과 과감하게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수소차 산업 육성 전략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보급 대수를 100만대로 늘리겠다며 ‘수소차 굴기(崛起)’를 선언했다. 지난 10월에는 친환경차 의무 판매 제도를 손질해 전기차의 가중치는 낮추고, 수소차는 높였다. 지방정부들은 앞다퉈 수소차 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 중국의 수소차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기술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중국 칭화대 연료전지실험실의 왕청증(王诚曾) 주임은 “현재 중국에서 만드는 수소차의 연료전지 핵심 부품은 수입산”이라며 “핵심 기술의 90%는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소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 도요타 같은 파트너가 있다면 기술 확보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수소차 분야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18일 현대차 마북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의 넥쏘의 성능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경기도 용인의 현대·기아차 마북환경기술연구소 성능실험실. 차량 한 대가 바퀴 부분이 어른 가슴 높이까지 들려 있었다. 수소연료전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넥쏘였다. 연구원 세 명이 복잡한 기계장치를 차량 하단에 연결해 컴퓨터에 기록된 제원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 차는 일선 영업현장에서 점검이 필요하다는 신고가 접수돼 실험실로 왔다. 연구원들은 특히 수소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연료전지 스택이 제대로 전력을 생산하는지, 어떤 개선점이 필요한지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구동실험을 반복해 진행했다.

넥쏘는 2018년 1월 출시됐지만, 현대차 마북연구소에서는 2년째 스택과 연료탱크, 구동모터, 고전압 배터리 등 넥쏘에 탑재된 핵심부품들의 성능 실험과 검증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차가 이렇게 넥쏘에 공을 들이는 것은, 넥쏘의 핵심 부품들이 그대로 현대가 준비하고 있는 수소 트럭에 쓰이기 때문이다. 김완승 현대차 연료전지사업기획팀 책임매니저는 “넥쏘는 앞으로 현대차가 선보일 모든 수소연료전지차 파워트레인의 기반 역할을 담당할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10월 공개한 수소트럭 콘셉트카 ‘HDC-6 넵튠’ 모습.

넥쏘에 탑재된 95㎾(킬로와트)급 연료전지 모듈을 두 개 붙이고 대용량 모터를 사용하면 그대로 버스나 트럭 등 상용(商用)차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본 도요타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내놓은 수소버스 소라(SORA)와 유사한 방식이다. 도요타의 소라는 수소 승용차 미라이(未來)의 114㎾급 연료전지와 113㎾ 출력의 모터를 각각 두 개씩 탑재하고 있다.

여기에 트럭의 용처에 맞는 구동 제어용 소프트웨어와 그에 맞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력관리 부품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관건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용차와 승용차의 구동 특성이 달라 소프트웨어 등을 최적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같은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 10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2019 북미 상용 전시회'에서 수소전용 대형트럭 콘셉트카 'HDC-6 넵튠(이하 넵튠)'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넵튠 콘셉트카를 기반으로 한 컨테이너 트럭을 2023년쯤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40톤 트럭을 기준으로 디젤 내연기관, 리튬이온 배터리, 수소연료전지를 동력으로하는 차량의 동력계 무게를 비교하면 수소연료전지가 가장 가볍다.

지난해부터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수소차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버스, 트럭 등 상용차 시장에서 기존 디젤엔진을 대체할 수 있는 동력으로 수소연료전지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상용차는 차량 자체 무게가 무겁고, 고중량 화물과 다수의 승객을 운송하므로 높은 출력을 요구한다. 기존 전기차 형태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트럭과 버스를 만들면 차량 무게가 급격히 늘어난다.

미국 에너지부(DOE)와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40톤급 트럭의 구동계(파워트레인) 무게를 비교했다. 기존 디젤엔진은 7.5톤인데, 전기차용 배터리로 대체하면 10톤으로 중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수소차는 7.0톤이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중량 차이는 전기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배터리와 연료전지의 무게 차이 때문이다. 순수 전기 트럭의 경우 7.5톤 가운데 4.5톤이 배터리다. 수소 트럭은 연료 전지 0.15톤, 보조 전력 공급용 배터리 0.6톤이 쓰인다.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에도 수소차가 유리하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한계가 있는 반면, 수소차는 고압수소탱크만 더 달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운행 중인 수소연료전지 기반 지게차.

이런 수소연료전지의 장점은 요즘 아마존 등 대형 유통기업의 물류센터에서 쓰이는 지게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류센터 같은 실내용 지게차에는 매연을 내뿜는 내연기관을 쓸 수 없어 일찌감치 배터리가 사용됐다. 주로 납배터리가 들어갔다. 그런데 미국 플러그파워(Plug Power)가 지게차용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대형 물류센터의 실내용 지게차는 수소 지게차로 바뀌었다.

물류센터는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지게차의 주행거리가 중요하다. 영하 20도의 냉동창고 등에서도 원활하게 구동해야한다. 기존 배터리 기반의 지게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추운 기후에 구동이 어려웠다. 충전하는 시간도 30분 이상 걸렸다.

이에 비해 수소지게차는 3분 정도 걸려 충전하면 수백 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다. 추운 냉동창고에서도 정상적인 구동력을 발휘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아마존, 월마트 등은 기존 배터리 지게차를 ‘수소지게차’로 바꾸었다. 플러그파워가 지난해 3분기까지 판매한 수소지게차는 총 2만9000대에 달한다.

수소트럭 시장이 가장 먼저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은 유럽이다. 유럽은 최근 배기가스 규제가 크게 강화됐다. 현재 운행 중인 내연기관 트럭은 몇 년 안에 친환경 트럭으로 교체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트럭의 2021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에는 15%, 2030년에는 30%까지 감축하도록 지난해 결정했다. 독일 에센주(州)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유로5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유해물질 배출 차량은 도심 진입을 금지할 정도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후지경제는 지난해 발표한 연료전지 전망 보고서에서 수소차용 연료전지 시장이 2017년 1757억엔에서 2025년 1조엔, 2030년 4조9275엔으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각국 자동차 업체들이 수소차 제품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하고, 2021~2025년 수소충전소 인프라가 대거 확충될 것으로 예상됐다. 후지경제는 특히 트럭, 버스 등 상용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수소차 생산 비용을 낮추는 데 핵심 역할을 상용차가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2050년 분야별 수소 사용 전망치

수소트럭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니콜라는 지난해 9월 영국 상용차·농기계 회사 CNH로부터 2억5000만달러(29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면서 기업 가치가 30억달러(3조4000억원)로 뛰어올랐다.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열차, 선박, 드론, 항공기 등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다른 운송수단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철도차량 회사 알스톰은 2018년 9월부터 독일 함부르크 인근 북스휘데-콕스하펜 노선에서 수소열차의 운행을 시작했다. 독일은 2022년 프랑크푸르트가 포함된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방의 노선에 수소 열차를 투입할 계획이다.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드론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드론은 비행시간이 짧다. 화물을 실으면 15분, 화물을 싣지 않아도 30분에 불과하다. 짧은 항속(航續)거리 때문에 활용범위가 적었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드론은 화물을 싣고도 2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현대차, 롯데케미칼, 맥킨지가 2018년 말 공동 발간한 ‘한국 수소 로드맵’에 따르면 적재하중도 4배 이상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