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6년간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중국의 '테크 굴기(崛起·일어섬)'가 2019년엔 주춤했다.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중국 IT 기업 실적이 부진했고, 투자도 대폭 감소한 탓이다. 특히 중국 반도체 굴기를 주도하던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서 추가 투자도 사실상 멈췄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내년에는 미·중 무역 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중국 제조 2025'를 선언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도와 자금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테크 전쟁의 진정한 승부는 내년에 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中 반도체 굴기 감속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 MP)는 지난 23일 "세계 테크 VC(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큰손 중 하나인 중국 텐센트의 올해 투자 건수와 액수가 대폭 줄었다"고 보도했다. 텐센트는 올해 유망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 343억위안(약 5조6900억원)을 투자했다. 작년 727억위안(약 12조700억원)보다 53% 감소했다.

중국 스타트업 투자도 줄었다. 기업 조사 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올해 1~11월 중국 스타트업은 362억달러(약 42조1000억원)를 유치했다. 1년 전(940억달러)의 40% 수준이다. 작년 35곳이 탄생한 중국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은 올해 16곳으로 줄었다.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반도체 굴기'도 흔들리고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 50여 대규모 반도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총투자비만 2430억달러(약 285조8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 중부 후베이성의 우한시는 반도체 대표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가 최근 재정 위기에 빠졌다. 중국은 애초 내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작년 기준 자급률은 15.5%에 머물렀다.

◇미·중 무역 전쟁과 경기 둔화 여파

SCMP는 "(테크) 기업의 투자 위축은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과 중국 내부 경기 둔화 탓"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대미 수출이 크게 줄었고, 화웨이·ZTE·하이크비전 등 중국 대표 IT 기업은 미국 내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지난 11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은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에 납품하기로 한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납품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중국에 첨단 장비를 공급하는 것이 미국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 둔화 영향도 크다. 2010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6%였지만 작년엔 6.8%로, 올해 3분기엔 6.0%로 떨어졌다. 지난 3일 기준 중국 업체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규모는 1204억위안(약 20조원)이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최대치였던 작년(1219억위안)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투자는 무분별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중국 온라인 경제 매체인 '차이신'을 인용해 "중국이 너무 많은 반도체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수십억달러를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정부가 오로지 시진핑 주석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산업단지부터 우후죽순식으로 세우고 본다는 분석이다.

◇성패는 내년 이후에

올해는 중국 테크 굴기가 주춤했지만 내년 부활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중 무역 분쟁이 1차 타결되면서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미·중 무역 전쟁 21개월 만에 '첫 합의'가 나온 만큼 내년 갈등이 봉합되면 중국 경기가 부활하고 테크 굴기가 다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5.8%에서 6%로 상향했다. 중국 기업의 투자 확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불확실성이 다소 걷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쏟아부어 산업을 키우는 '중국식 발전 방식'도 아직 유효하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반도체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등 기술 분야 육성 의지가 워낙 강해 내년부터 투자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