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패션 스타트업 119레오는 올해 얻은 수익의 50%인 1500만원을 소방관 지원 단체에 전달한다. 수익의 절반을 소방관 단체에 내놓은 것은 119레오가 제작·판매하는 가방·액세서리 자체가 소방관이 쓰던 폐방화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6년 문을 연 이 업체는 서울·인천 지역 6개 소방서로부터 버려지는 방화복을 수거해 패션 잡화를 제작했다. 폐방화복 한 벌이면 작은 가방 4~5개를 만들 수 있다. 섭씨 500도 열기를 견디는 특수 소재로 구성된 방화복으로 만든 가방이라 품질도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다. 소방관을 돕는 업체라는 점이 소문을 타며 올해 판매량은 작년의 두 배로 늘었다. 119레오의 이승우 대표는 "수익의 절반은 공무를 수행하던 과정에 발암 물질에 노출돼 암·백혈병에 걸렸지만, 공상(公傷)으로 인정받지 못한 소방관 지원에 쓰인다"고 했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한 시민이 소셜스타트업 수퍼빈의 재활용 분리수거기에 페트병을 넣고 있다. 압착된 폐기물은 분리수거 업체에 판매된다. 판매 금액은 폐기물을 수거기에 넣은 사람에게 준다.

스타트업 하면 혁신성을 기반으로 '대박'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최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소셜스타트업(소셜벤처)'이다. 수익은 물론 사회적 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공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회성, 사업 모델의 혁신성 이 두 가지를 충족한 스타트업을 소셜스타트업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소셜스타트업은 1500개로 추정된다.

◇기부·친환경·공정 등 콘셉트 내세워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공원. 한 시민이 자판기 모양의 기기에 쓰레기를 넣자 시각 AI(인공지능) 센서가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과 그렇지 않은 폐기물로 구분했다. 스타트업 수퍼빈이 내놓은 재활용 분리수거기 '네프론'이다. 이 기기 한 대에 캔은 최대 1000개, 페트병은 1500개까지 압착 가능하다. 네프론에 모인 캔과 페트병은 별도의 선별 작업 없이 재활용업체로 보내진다. 수퍼빈은 네프론 설치·관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으로부터 수익을 얻고, 재활용품 판매 금액은 이용자에게 나눠준다. 이용자는 페트병은 5원, 캔은 7원꼴로 보상받을 수 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분리수거 후에도 별도의 분리 작업을 해야만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네프론을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생태 등의 가치를 내세우는 스타트업도 많다. 어스맨은 파키스탄의 건과일과 라오스의 수공예품 등을 공정무역 형태로 들여와 유통하고 있다. 이 업체 측은 "제품 뒷면에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명시하는 공정무역 제품은 소비자가 믿고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늘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건타이거는 동물을 죽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비건(Vegan) 패션'을 표방하는 패션업체다. 비건은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하는데 비건패션은 동물 가죽이 아닌 인조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이나 코트 등을 의미한다.

소방관이 쓰던 폐방화복을 재활용한 119레오의 가방과 액세서리(왼쪽). 이 업체는 폐방화복을 수거해 패션 아이템을 만들고, 수익금 절반을 소방관 지원 단체에 기부한다. 동물을 죽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비건(Vegan) 패션'을 표방한 패션업체 비건타이거의 패션 상품들(오른쪽).

패션업계 관계자는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늘면서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누군가를 착취해 만든 물건은 쓰고 싶지 않다는 젊은 세대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크레파스 솔루션은 금융 거래가 많지 않은 20~30대를 위한 '성실성 담보' 대출을 내놓았다. 최근 문자 메시지 수신 대비 발신 비율을 보고 이 청년이 다른 사람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지, 매일 아침 스마트폰 충전이 잘돼 있는지 등 생활 패턴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소셜스타트업 위한 펀드 조성해야

소셜스타트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 초 사회연대은행·한국씨티은행이 138개 소셜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 곳 중 두 곳(64.8%)이 연 매출 1억원 미만이었다. 85.1%가 2016년 이후에 문을 열었다. 아직 초창기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소셜스타트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큰 규모의 투자와 펀드 조성이 필요한데, 대부분 업체가 개인투자로 자금을 마련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중기부는 "다음 달 소셜스타트업에 대한 구체적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부 차원에서 펀드를 조성하고 지원 조직을 갖추는 등 구체적인 육성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