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새벽배송·당일배송 등 유통가가 앞다퉈 배달 전쟁을 치른 한 해였다. 이제 '초고속 배송'은 특정 업체만의 차별화 경쟁력이 아닌 물류의 기본인 시대가 됐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업계의 배송 전투는 최근 새로운 영역으로 확전(擴戰)하는 모양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2020년은 반품(返品) 전쟁이 격화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송 전(前) 단계에서 벌어졌던 속도 경쟁이 배송 후(後) 반품 절차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품 홍수 시대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실물을 확인한 뒤 구입하는 오프라인 쇼핑 대신, 모니터·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사양을 미뤄 짐작한 후에 주문하는 온라인 쇼핑이 폭풍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반품 요청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영국 경제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 시각) 미국 소비자들이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시즌에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 중 1000억달러(약 116조원)어치를 반품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지난달부터 열린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사이버먼데이(12월 첫째주 월요일)·수퍼새터데이(크리스마스 직전 토요일) 등 미국 최대 쇼핑 이벤트에서 잇따라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반품 수량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온라인 쇼핑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구입할 때보다 반품할 확률이 거의 3배나 높다"며 "온라인 쇼핑객 중에선 정확히 어떤 물건을 고를지 확신하지 못해 같은 제품을 색상·크기별로 여러 개 주문한 뒤 나머지를 반품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마치 집을 오프라인 매장 '피팅룸'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류·부동산 기업 CBRE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온라인 반품률도 매년 10%포인트씩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반품 관리업체 옵토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한 해 동안 보잉 747 항공기 5600대를 꽉 채울 분량에 맞먹는 227만t의 반품 상품이 쓰레기 매립지로 간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객이 급증하면서 배송 후 반품 절차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에선 올해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시즌에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 중 1000억달러(약 116조원)어치가 반품될 전망이다. 아마존(사진)은 최근 소비자들이 반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1만9000여개 오프라인 매장을 반품 장소로 쓰고 있다.

반품 택배량도 상상 초월이다. 글로벌 운송업체 UPS는 "올해 미국의 연말연시 휴가 기간 동안 반품 택배가 매일 100만 건에 이르는 상황"이라며 "매년 미국 반품 택배량이 최대치를 찍는 내년 1월 2일 190만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UPS는 연말 쇼핑 시즌·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1월 2일을 '국가 반품의 날(National Returns Day)'이라고 부른다. 2016년 100만건이었던 국가 반품의 날 택배량은 4년 만에 90% 늘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 쇼핑 반품률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온라인 쇼핑 한 달 거래액이 12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반품과의 싸움'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롯데 관계자는 "국내 유통 시장의 온라인 쇼핑 비중이 지난해 26% 수준에서 2028년이면 37%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온라인 유통업체의 반품 프로세스가 소비자·판매자 모두에게 골칫덩어리가 되지 않도록 특별 관리해야 할 중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반품 관리가 곧 경쟁력

반품 관리 능력은 소비자 만족도는 물론 기업 수익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단순 변심, 주문 오류 등으로 발생한 반품 비용 일부를 소비자에게 부담시킨다고 해도, 제품 검수·재입고 절차에서 인건비·보관비 등이 발생한다. 재판매될 때까지 재고로 떠안고 있는 기간 동안 유행이 지나버리거나 보존 기한을 넘기며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옵토로에 따르면 반품 요청이 들어온 제품의 절반 정도만 재판매가 가능하고, 나머지 제품은 손상됐거나 박스가 개봉돼 원래 가격에 되팔기 어렵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물류 창고에서 보관 중인 반품 의류의 가치가 2개월이 지나면 20%, 4개월이 지나면 50% 떨어지고, IT 기기의 경우 매달 4~8%씩 감소한다고 본다. 미국 유통업계에선 반품으로 매년 500억달러(약 58조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비용을 줄이려고 반품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건 온라인 쇼핑객을 제 손으로 내쫓는 조치다. 아마존은 이달부터 의류·신발·침구에만 적용해오던 '무료 반품' 혜택을 이달부터 전자제품·애완용품·주방용품 등으로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대신 오프라인 서점·식료품점 등 1만8000개 오프라인 반품 장소를 마련하고, 콜스 백화점의 1100개 매장에서 무료 반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유통업체들도 반품 관리 시스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11번가는 반품, 환불 속도를 높인 '안심환불 서비스'를 지난 6월 도입했다. 이전에는 반품 상품을 수거한 뒤 판매자에게 전달하고, 판매자 확인을 거쳐 최종 승인을 내리는 단계를 거쳤다. 안심환불 서비스는 이 과정을 줄이고 11번가가 내용을 검토해 바로 환불 처리를 해준다. 11번가 관계자는 "이전에는 반품 신청부터 환불까지 8일 정도 걸렸지만, 이번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그 기간이 2~3일 정도로 빨라지게 됐다"며 "고객센터에 들어오는 고객 문의 중 반품, 환불에 대한 내용이 25%로 가장 많아 새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CJ ENM 오쇼핑부문은 올해 초부터 TV홈쇼핑 판매 상품에 한해 당일 회수 서비스를 하고 있다. 1~11월 당일 회수 건수는 124만 건에 달한다. 이에 더해 지난 6월부터는 당초 물품을 배송받은 곳이 집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상품을 반품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오쇼핑 관계자는 "비(非)대면 쇼핑에선 반품이 잘돼야 쇼핑 문턱도 낮아진다"며 "회사 차원에서 반품 경쟁력을 높이려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점포가 없는 온라인 쇼핑몰 등도 편의점과 손잡고 반품 서비스를 개선 중이다. 편의점 GS25, CU, 세븐일레븐 등은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의 반품 거점으로 변신했다. 26개 온라인 유통업체와 손잡은 GS25는 오후 5시까지 반품을 접수하면 당일 해당 업체로 발송한다. GS25 관계자는 "매월 2만 건 정도의 온라인 쇼핑몰 구매 상품이 GS25를 통해 반품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벌이상 주문하시면 다양한 사이즈 가지고 댁으로 출동합니다]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반품 원천 봉쇄 작전'에 뛰어들고 있다. 주문 오류로 반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소비자가 아예 '구입 취소'까지 가는 걸 막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더한섬닷컴' 직원이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고객의 집에 가져가 직접 보여주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여름 인공지능·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해 스마트폰으로 발을 스캔하면 신발 사이즈를 추천해주는 '나이키 핏' 서비스를 선보였다. 무신사는 모델이 착장한 모습을 360도로 돌려볼 수 있는 '360도 코디숍'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우스를 움직이면 모델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입체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SSF숍은 3회·도합 100만원 이상 구입한 VIP 고객에게 '홈 피팅'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예를 들어 95사이즈 티셔츠를 주문하면 처음부터 90·100사이즈까지 같이 보내주고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도록 한 뒤 나머지 제품을 무료로 수거해 간다. 한섬의 더한섬닷컴도 VIP 고객이 상품을 3개 이상 주문할 경우, 담당 직원이 차를 몰고 가서 다양한 사이즈 제품을 직접 보여주는 '앳홈'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스타일쉐어는 PB(자체 브랜드) '어스'를 론칭하면서 첫 구매자에게 택배비를 받지 않는 1회 무료 교환 정책을 시행했다. W컨셉 김효선 마케팅 본부장은 "반품을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편하게 만들어 망설이는 소비자를 붙잡아야 한다"며 "온라인 쇼핑몰은 최근 클릭 한 번으로 반품 처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속속 갖추는 추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