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AI 자격증만 22개...실제 규모는 파악 안돼
기업 AI 인재 채용 담당자들 "실력 키우고, 취직하는 데 별 도움 안된다" 지적

"여러분 인공지능(AI) 자격증에 낚이지 마세요. 실질적으로 거의 도움이 안 됩니다."

국내 IT 대기업에 종사하는 한 AI 전문가는 최근 우후죽순 생겨나는 AI 자격증에 관련해 "차라리 기업이나 정부, 학교, 학회가 주최하는 AI 대회에 참여해 보라"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필기 위주의 자격시험을 통과한다고 AI 기술, 능력이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다른 AI 인재 채용 담당자들의 얘기도 비슷합니다. 깃허브(GitHub, 오픈소스 공유 커뮤니티)나 캐글(Kaggle, 데이터 과학자 커뮤니티)에 프로젝트를 올리고 현직 프로그래머, 데이터 과학자들과 토론하며 배우는 것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AI 자격증을 땄다고 실제 채용 때 우대해주는 기업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시험보다 경험… 자격증 실효성 떨어져

핵심은 AI 전문가는 시험이 아니라 경험이 만든다는 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IT(정보통신) 기업은 이런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MS는 작년 6월에 깃허브를, 구글은 2017년 3월 캐글을 각각 인수했습니다.

픽사베이

한데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최근의 분위기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AI 전략을 발표하는 등 AI 산업 지원 정책이 줄줄이 나오고 AI 기술 인력 양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단기 속성’ 혹은 ‘실효성 미검증’ 자격증이 난립하게 된 것입니다.

27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AI 관련 자격증은 22개에 달합니다. 2018년 AI 자격증이 처음 등장한 데 이어 △AI분석전문가 △AI개발전문가 △AIoT(사물지능)융합지식사 △AI채용컨설턴트 △AI자율주행운전지도사 △인공지능산업컨설턴트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올해만 12개의 민간 자격증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AI 자격증 개수가 총 몇 개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문제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취업 준비생들이 AI 관련 자격증 취득에 나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취업 준비생 입장에선 단순 스펙 쌓기용으로 쓸지라도 자격증에 손이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AI 자격증이 과거 ‘컴활'로 불렸던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처럼 이력서 빈칸 채우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유명무실한 자격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외국계 기업에 종사하는 AI 전문가는 "실무에 도움이 안 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지원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AI 관련 학과도 검증 필요… "대학에 자율권 부여해야"

국가가 앞장서서 진행하는 ‘AI 계약학과’에 관한 우려도 나옵니다.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단편적인 처방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 역량을 갖춘 인재양성을 위해 고교와 전문대 교육과정을 통합해 2022년 5개 전문대가 시범 운영되도록 할 방침이지만, AI 관련 중급 기술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김진형 중앙대 소프트웨어대학 석좌교수(전 인공지능연구원장)는 "AI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선 대학을 비롯한 교육계 전체에 혁신이 필요하다. 가장 지성적인 집단인 대학이 스스로 변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해 경쟁하게 하는 것이 AI 시대 대학교육 혁신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국가가 주도해 지침을 내리는 톱다운 방식으로는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의견입니다.

실제로 해외에선 구글 등 혁신 기업이 앞장서서 산학협력 방식으로 AI 인재를 키우고 선점하는 게 현실입니다. 국책 연구기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지난 10월 내놓은 ‘AI 두뇌지수: 핵심 인재 분석과 의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AI 상위 전문가 500명 중 한국은 7명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은 73명(14.6%)으로 1위, 중국은 65명으로 2위를 기록했고, 싱가포르도 31명으로 우리보다 AI 인재가 3배 이상 많습니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AI 인재 확보 전투에서 패한다면 미래 성장 동력 마련이라는 전쟁에서도 패할 수밖에 없다"며 "자격증, 단기 교육과정 등 실효성 떨어지는 방식이 아닌 경험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한 근본적인 교육시스템의 변화와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