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소재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영구 정지가 확정됐다. 2022년까지 가동 연장 승인이 난 원전을 강제로 멈추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줄어든 국내 원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심화될 전망이다.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를 표결로 확정했다.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영구정지 원전이다.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설계수명 30년 만료로 2012년 운전이 중단될 예정이었으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22년까지 10년간 연장 운전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아 설비 보강 공사 후 지난 2015년 6월 발전을 재개했다. 이 공사에는 70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계획예방정비를 위해 출력을 줄이던 과정에서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해 6월 한수원 이사회는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여기에는 현 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원전 업계는 잇따른 원전 건설·운영 중단이 원전 산업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당장 전력 공급에 영향을 미쳤고, 전기 요금 인상이란 결과도 따라왔다.

대표적으로 한국전력은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이용률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을 늘린 영향이 크다.

한수원 홈페이지

◇ 2018년 여름 전력난 초래 논란 빚기도

지난 2018년에는 월성 1호기 가동을 무리하게 중단해 전력난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폭염 속에서 전력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자, 블랙아웃(대정전) 우려가 높아졌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월성 1호기의 발전 능력이 67만9000kW 인데, 이게 가동됐을 경우 전력 예비율은 0.5%포인트(P) 정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력 예비율이 10% 전후를 유지하면서 기업에 자발적 적절인 수요감축(DR) 등을 요구하느냐 마느냐 논란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월성 1호기 폐쇄 과정에서 수익성을 무리하게 낮춰 잡았던 것도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한수원은 '중립' 시나리오에서 가동률을 60%로 잡았다. 당시 한수원은 "평균 가동률 60%에서 현재가치로 200억원 가량 이익이 나지만, 다시 한 번 가동을 중단시키면 25일만에 흑자를 모두 소진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용률의 경우 월성 1호기가 발전을 중단한 2017년 5월 28일부터 그해 말까지 기간이 이용률 산정에 포함됐다는 문제가 있다. 2017년의 경우 한수원은 40.4%라고 밝혔지만 그해 1~5월만 놓고 보면 이용률은 96.2%에 달한다.

최근 3년간 가동률(2015~2017년)의 경우 74.1%에 해당한다. 가동률이 낮아지면 고정비용 비중이 높은 원전 특성 상 경제성이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월성 1호기 폐쇄 등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전력(015760)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전기요금 논란에도 불이 붙었다. 한전은 2015~2016년 각각 1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거둘 정도로 우량기업이었는데, 탈원전 정책에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발전 단가 대폭 늘어나면서 2018년부터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부실기업으로 추락했다.

급기야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1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1조1400억원에 달했던 각종 전기료 특례할인을 모두 폐지하고 전기요금의 원가를 공개하겠다"는 사실상의 요금인상안을 내놓았다. 이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한전은 발언이 와전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한국전력은 최근 전기요금 인상이 없는 상황에서 연료비가 계속 오를 경우에 대한 미국 증권거래소(SEC) 질의에 대해 "재무 상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원전 전문 중기 매출 7분의 1로 추락…산업 붕괴

원전 업계는 잇따른 원전 건설·운영 중단으로 전문 인력이 이탈하고 관련 협력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원전 생태계가 붕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두산중공업은 내년 말이면 공장 가동률이 10%선으로 떨어질 전망인 가운데 460여개 협력 업체 매출도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해 폐업기업이 속출하는 등 생태계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 원전의 점검과 가동을 책임질 인력이 줄면서 원전 안전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인력이 이탈하고, 새 인력 충원도 되지 않는 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한전기술·한전KPS 원전 관련 공기업에서 자발적으로 퇴직한 사람은 2015년 78명에서 2018년 144명으로 뛰었다.

이들은 다른 산업으로 전직하기도 하지만, 아랍에미리트(UAE) 등 원전 전문가 수요가 있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현재 UAE의 한 원전업체에서는 한국인 직원 6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UAE로 회사를 옮긴 40대 초반의 석사급 원전 설계 전문가 A씨는 "한국에선 더 이상 원전을 안 짓고, 수출에 대한 희망도 없어 떠났다"며 "원전 인력 '엑소더스(대탈출)'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A씨는 "요즘도 한국의 후배들이 전화해 'UAE에 자리 없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도 속속 이탈하고 있다. 서울대 원자력 전공자 가운데 중도포기자는 2015년 24명에서 2019년 56명으로 늘었고, 복수전공자도 2015년 11명에서 2018년 58명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내세운 ‘원전 수출 활성화’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수명이 남은 월성 1호기의 운영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범정부 차원의 원전 수출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정책으로 수출 물량 절벽을 맞게 된 한국 원자력 산업은 고사 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