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자연 모방 기술에 기반을 둔 청색 경제(blue economy)라는 화두를 던져 환경론자와 성장론자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귄터 파울리는 최근 저서 '자연의 지능'에서 현대 경제 시스템을 진보시키기 위한 12가지 방향에서 사고를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사상적 연원은 로마클럽에 있지만, 지금 내놓는 대안들은 그것을 이미 넘어서 있다.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 원리에 기반을 둔 개선된 생산 기술로 균형 잡힌 성장을 추구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빈부 격차를 해소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100년간 확산된 대량생산과 표준화 시스템은 물론이고, 막연히 자연 회귀, 자원 재활용, 또는 탄소배출량 감소를 통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사고조차도 배격한다. 현실에 없는 이상론을 펼친 것이 아니다. 저자는 25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실제로 등장했던 200여개 프로젝트에서 이 원리들을 추출했다.

가장 먼저 생산 활동의 시야를 2D에서 3D로 전환할 것을 주문한다. 2D는 모든 현상을 '이것' 한 가지에만 주목하고 '이것 아닌 것들'을 무시하는 사고다. 예컨대 2D 어업은 단위 면적당 어획량을 높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반면에 3D 어업은 어획량 제고를 추구하지만 거기에 생태계가 어떻게 협업하는지를 알고서 행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새우잡이 어부들은 해안에 서식하는 맹그로브 나무가 조업에 방해가 된다고 잘라냈다. 그 나무의 뿌리가 물을 정화하고 새우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생태 원리를 몰랐던 것이다. 어획량이 오히려 점점 줄어들자 과학자들이 참여해서 그 원인을 알아냈다. 그들은 다시 나무를 심었고 어획량도 다시 늘어났다.

이 책은 전통적 환경론자들이 답습했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아니라 '더 많이, 더 잘할 것(more and better)'의 철학을 추구한다. 2D 사고에서 폐기물이나 방해물로 보였던 것들, 예컨대 커피 찌꺼기, 곡물 짚, 분뇨 등은, 3D 사고에서 오히려 수많은 사업 기회를 낳는 자원으로 전환되면서 진정한 생산 효율성을 이룩할 수 있다.

▲외부에서 자원을 조달하기 전에 지역 사회가 이미 갖추고 있는, 숨은 자원들을 찾을 것 ▲단지 생산 비용을 절감하려고만 하지 말고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 주력할 것 ▲소수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다양한 이익을 줄 수 있는 생산을 추구할 것 ▲사업 성과의 극대화가 아니라 최적화를 추구할 것 등 저자가 제안한 12가지의 자연 기반 경제 원리를 통해, 이 시대가 당면한 무분별한 성장의 폐해와 지역 공동체 파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