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명 인구의 인도는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이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삼성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도에서 굳건한 1위였다. 지금은 저가 제품으로 무장한 중국 샤오미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오포·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연합군'도 삼성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중국 시장 완패에 이어 인도 시장까지 위협받자 삼성은 저가폰과 현지화를 무기로 시장 재탈환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총괄 고위관계자가 최근 인도의 한인 모임에서 "우린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과 안시성 전투의 양만춘 장군과 같은 심정으로 중국과 싸우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인도 시장의 위기감과 절박함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1400여년 전 고구려가 중국 수(隋)·당(唐) 대군과 맞섰던 것처럼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인도 시장에서 배수진을 쳤다는 뜻이다.

◇삼성 對 중국 연합군

22일 홍콩의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터리서치에 따르면 올 3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샤오미(26%)·삼성(19%)·비보(17%)·리얼미(16%)·오포(8%) 순이다. 삼성을 빼면 전부 중국 업체다.

중국 업체가 인도 스마트폰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합종연횡을 통한 '원(one) 차이나' 전략 덕분이다. 중국 업체들은 인도 시장에서 출혈 경쟁이 아니라 가격대별 맞춤형 제품 출시를 통한 시장 분할 전략을 썼다. 삼성전자의 고가 스마트폰인 갤럭시S10과 노트10에는 중국 원플러스의 '원플러스 7 프로'가 맞대응한다. 이 제품은 퀄컴의 최신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건 855와 6.7인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탑재했다. 갤럭시노트10+와 거의 같지만, 가격은 54%에 불과하다. 삼성의 중저가폰인 갤럭시A 시리즈엔 '비보-오포-샤오미'의 연대가 맞선다. 팝업(튀어나오는) 카메라를 탑재한 비보 V17프로, 30분 초고속 충전 기능의 오포 F11, 후면에 렌즈 4개의 카메라를 탑재한 샤오미 홍미노트8이 대표작이다. 이 제품들은 구매력이 크지 않지만 첨단 기술에 예민한 인도의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업체별 물량·마케팅 공세도 거세다. 비보는 삼성전자·구글·페이스북 등 인도법인이 몰려 있는 뉴델리 남부 신도시 구르가온 지하철역에 '비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내부를 자사 스마트폰 광고로 도배했다. 샤오미는 상시 1000∼2000루피(약 1만7000∼3만4000원) 할인 정책을 바탕으로 인도에서 판매량 1억대를 넘겼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원 차이나 전략은 중국 정부의 입김 때문이라고 현지에서는 분석한다. 인도 IT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자금줄을 틀어쥐고 업체 간 질서를 유지한다"며 "출혈 경쟁을 하면 정부가 대출을 막거나, 대금 결제를 규제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샤오미를 제외한 오포·비보·원플러스가 BBK그룹 계열사라는 점도 일사불란한 제품 출시를 가능하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용도 터번 쓰고 5G 공략

삼성전자는 저가 스마트폰을 늘리는 동시에 현지화로 맞대응에 나섰다. 대표작인 갤럭시M30s는 6000㎃h(밀리암페어시)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노트10보다 50%가량 배터리 용량이 크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잦은 충전이 힘든 현지 상황을 반영했다. 갤럭시M10은 6.3인치 대화면을 탑재해 동영상·게임을 즐기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지만 가격은 8990루피(약 15만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친(親)인도 행보도 강화하고 있다. 작년 7월 인도 노이다에 세계 최대 스마트폰 공장을 준공했고, 지난 9월 전용 할부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의 딸·아들 결혼식에도 인도 전통 의상과 터번을 쓰고 참석했다. 현지 1위 통신사인 릴라이언스 지오와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선 화웨이, 미국에선 애플에 밀린 삼성전자가 인도에서마저 밀리면 주요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잃는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늘 '인도에서만큼은 절대 밀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