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종영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B급 예능의 대표 주자로 불린다.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의미 없는 도전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13년간 장수하며 수 차례 연예대상을 휩쓸었다. 처음엔 존재감이 낮았던 출연진과 연출자도 모두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국내 1등 배달 앱 배달의민족은 ‘무한도전’을 모티브로 출발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토요일 저녁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본방을 사수하는 정서를 지닌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을 겨냥해 배달의민족을 창업했다.

배달의민족은 B급 문화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를 외치며 철가방을 들고 고구려 벽화 속을 내달리는 배우 류승룡의 TV 광고로 눈도장을 찍고, 다이어트와 몸짱 열풍으로 먹는 게 죄악시 되는 시대에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이뻐"라며 먹부림을 지지했다.

이어 신춘문예, 치믈리에 등 유치하지만 친근한 B급 코드로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급기야 팬클럽 ‘배짱이(배달의민족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를 발족해 김봉진 대표가 직접 싼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가기도 했다. 배달앱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때도 김 대표는 "1등은 ‘문화’로 이야기 해야 한다"며 B급 마케팅을 고집했다. 그렇게 우리 일상엔 ‘별 걸 다 배달해 먹는’ 생활방식이 스며들었다.

배달의민족은 창업 9년 만인 올해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됐다. 이는 아시아나항공 매각가(2조5000억원)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로, 국내 인터넷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 M&A(인수합병)다.

하지만 국내 배달 앱 점유율 2·3위인 요기요·배달통을 가진 DH가 배달의민족을 소유하게 되면서 독점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달 세 배달 앱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98.7%다. 이에 자영업자들은 "DH의 시장 지배권이 높아지면 소비자 할인 혜택이 줄고 수수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연일 성토 중이다.

민족성에 호소하던 배달의민족의 행보에 배신감을 느낀 배짱이들도 ‘게르만 민족’, ‘배다른 민족’이라며 조롱하고 나섰다. 소비자를 매료시킨 언어유희가 굴욕적인 패러디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배달 앱 사용을 중단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배달의민족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을 거다. 그래서 매각 보도자료에서 업계 익명 관계자의 입을 빌려 "일본 자본을 등에 업은 C사(쿠팡) 등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되면서 토종 앱의 위기감이 커졌고, 이에 글로벌 연합군을 결성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은 해외 매각을 하면서 나름의 명분을 내세웠다. 세계 시장 진출을 통한 더 큰 성장이다. 그렇더라도 독점 논란을 피하고자 경쟁사를 저격해 변명을 늘어놓는 건 ‘배민다운’ 처사가 아니었다. 이미 우아한형제들은 중국, 미국 등 외국계 투자 비중이 커 토종 기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고, 독일 기업인 DH가 일본 자본에 맞서 한국 시장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없다. 차라리 시장 독점으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자영업자와 배달업자, 소비자를 위해 구체적인 상생 방안을 약속하는 편이 더 배달의민족다웠을 거다.

배달의민족이 사람들로부터 각별한 관심 끈 것은 ‘배민다움’을 지켰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은 B급 문화라는 확고한 브랜딩으로 시장의 승자가 됐지만, 매각 과정에선 불편한 반응을 피하고자 핑계를 둘러댔고 결국 어렵게 쌓은 브랜드 이미지마저 훼손하고 말았다.

이번 만큼은 높은 기업가치에 걸맞은 진중한 태도로 시장과 소비자를 설득해야 했다. 만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합병을 불허해 매각이 무산되더라도, 배달의민족이 다시 ‘우리 민족’으로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다.

‘무한도전’은 지난해를 끝으로 종영했다. 그들의 도전이 진부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 유명세만으로도 몇 년은 더 일등을 지키고 수익을 낼 수 있을 테지만 ‘일단 멈춤’을 택했다. 대신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를 내놨고, 여전히 시답잖은 무(모)한 도전을 일삼으며 시청자들을 웃긴다.

배짱이들도 배달의민족의 진부한 성공을 원치 않는다. 혁신으로 시장을 일궜다면, 끝까지 다름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배민다움’이자, 배달의민족이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