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세계경제 소폭 성장 둔화 불가피...美 대선도 변수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 교역채널·공급망 다변화 시급 AI·5G 등 첨단기술,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시간 필요

"2020년 세계 경제는 소폭의 성장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은 실업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11월 3.5%로 1969년 이후 50년만에 최저) 신규 일자리를 올해처럼 높은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 경제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독일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큰 기대는 금물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부채 문제로 중국 경제의 성장 곡선도 다소 완만해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 경제학 교수는 세계적인 통화·금융시스템 전문가다. 예일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아이켄그린 교수의 연구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전 의장의 통화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UC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1987년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다룬 책 ‘한국 경제: 기적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아이켄그린 교수에게 이메일로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을 물었다.

내년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들을 꼽는다면. "미·중 무역전쟁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세 부과로 가격 부담을 느낀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지출을 줄인다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 등) 중남미의 정국 혼란도 갈수록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지구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각각 어떤 상황인가. "미국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건 틀림 없어 보인다. 높은 자산 가격과 낮은 실업률이 그 증거다. 하지만 노동 참여 비율과 기준금리, 생산성이 여전히 낮다는 건 미국 경제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중국 성장률 저하는 아직까지 중국 정부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무역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이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쪽이 더 고통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묻는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중국이 더 유리해 보인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고통으로) 불만을 품은 소비자나 농부들이 있어도 미국에서 처럼 투표를 통해 '심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상대방에 대한 교역 의존도를 줄이고 채널을 다변화 할 수 있는 여력도 중국이 미국보다 크다. 예를 들어 중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대두(大豆)는 브라질산으로 대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굴기(崛起)를 집중 견제한 것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독립'을 돕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겪으면서 외국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을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무역전쟁 이전부터 국산화를 통한 기술 독립에 공을 들여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으로 가속도를 더해줬을 뿐이다."

한국은 미·중 양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supply chain)에 있어 중국 의존도를, 수출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

2년전 기자가 한국 경제를 위한 의견을 구했을 때 아이켄그린 교수는 "장기적으로 교육 개혁도 경제 성장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며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에도 그는 한국이 교역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상대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이었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그리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250조9000달러(약 29경1294조원)에 달할 만큼 전세계적으로 불어난 부채에 대해 걱정하는 의견도 많다. "선진국들의 경우 지난 수십년간 기준금리 하락세를 이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부채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준금리가 상당히 오른 이후에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경제가 나빠지면 그것도 큰 문제 아닌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양적완화(QE) 정책이 효과를 보긴 어려울테니 말이다. "양적완화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리가 낮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적완화 같은 확장적 통화정책의 한계가 자명한 상황인 만큼 다음 경기침체기에는 (감세와 재정지출 한도 확대 등) '확장적 재정정책'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확장적 재정정책이 효과를 볼 여지가 충분하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자산은 국·공채나 주택저당증권(MBS), 회사채 등 다양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 양적완화(QE)를 통해 4조5000억달러(약 5224조원)의 자금을 시장에 풀었다.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도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미시간주 배틀크릭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에 손을 흔들고 있다.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 결과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엄청난 영향을 미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상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전망은 어렵다. 민주당의 경선 후보 중에는 자유무역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만큼 변덕스럽고 앞뒤가 안 맞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인공지능(AI)과 5G(5세대 이동통신),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은 내년 세계경제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까. “새로운 기술이 실생활에 사용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업들이 신기술을 도입하려면 사업을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고 198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가 “컴퓨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볼 수 없다(당시에는 생산성 증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뜻)”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AI와 5G 등 첨단기술을 우리는 곳곳에서 접하게 되겠지만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