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선 경찰들이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취급에 문제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실태 파악 및 검사를 요청했다. 은행들이 전세자금대출 심사와 관리를 소홀히 해 전세 사기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세대출 사기를 수사 중이던 인천경찰청은 지난달 금감원에 공문을 보내고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취급 검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정부기금으로 운영되는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문제가 생기더라도 손실 위험이 거의 없어 은행들이 서류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대출을 내주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은행들의 관리 소홀은 전세대출 사기에 악용된다"고 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전세대출을 이용한 전세 사기가 만연해지면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까지 수사에 나섰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부산 등지에서 비슷한 수법의 전세대출 사기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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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허위 임대인을 내세워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동시에 받아 가로채는 수법을 쓴다. 예컨대 매매가 2억원짜리 빌라가 있다면 사기범들은 계약금으로 4000만원만 주고 잔금은 전세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받아 주겠다며 집주인과 계약을 맺는다.

보통 은행들은 계약서와 계약금 납입 영수증, 확정일자 등만 있으면 전세대출을 실행한다. 특히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공기관들이 수탁은행을 통해 취급하는 공적자금 전세대출의 경우 부실이 발생해도 은행들이 손실을 입지 않아 더욱 대출 심사에 소홀하다는 것이 경찰측의 주장이다.

이후 전세 세입자는 은행에서 전세대출 1억6000만원을 받아 집주인에게 송금한다. 그러나 대출을 받은 전세 세입자 역시 사기꾼들과 공범이다. 공범은 대출을 받은 직후 곧바로 다른 주택으로 전출신고를 한다. 전세대출은 세입자에게 나가는 대출이라 세입자가 다른 집으로 전출하면 다른 은행들은 해당 주택에 전세대출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사기꾼 일당은 세입자가 없는 것처럼 속이고 이 집을 담보로 8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 받는다. 4000만원으로 2억원짜리 빌라를 구매하고 주택담보대출 8000만원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집을 여러 채 구매해 수십억을 가로챈 일당들이 최근 서울과 경기, 부산 등지에서 대거 붙잡혔다. 경찰은 원리금 미납 등 대출 부실이 발생해야 해당 주택 거래가 전세사기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 적발되지 않은 비슷한 수법의 사기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꾼들은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차익을 남기고,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경우 이자를 내지 않고 집을 경매에 넘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 매각돼도 주택담보대출이 먼저 변제되기 때문에 전세자금대출을 내준 은행은 대부분 한푼도 건지지 못한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들이 전세대출을 실행할 때 대출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사후 점검을 하지 않아 이를 악용한 전세대출 사기가 심각하다"며 "금감원에서 전세대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은행들에 대해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공문을 전달받은 금감원도 전세자금대출에 허점이 있는지를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세입자가 전출하면 다른 은행에서 전세대출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점을 악용한 사례"라며 "세입자가 아니라 주택에 대한 대출 현황을 금융권에 공유하면 사기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