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가주택과 다주택에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율을 크게 높인 데 이어, 공시가격 인상률에도 차등을 두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료 등 60개 분야에 활용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시장 안정을 위해 종부세 세율을 차등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건강보험료를 비롯해 여러 행정행위의 기준 자료로 쓰이는 공시가격에 집값을 잡겠다는 이유로 징벌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7일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집값별로 차등 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세 9억∼15억원 공동주택은 현실화율을 70%까지, 15억∼30억원대는 75%까지, 시세 30억원 이상은 80%까지 올릴 계획이다. 현실화율이 높아지면 공시가격 자체도 더 높게 산정된다.

이렇게 되면 집값이 비쌀수록 공시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10억원인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7억원이 되지만, 집값이 세 배인 30억원짜리 집의 공시가격은 24억원으로 3.4배 쯤이 된다. 종합부동산세율도 누진 구조인데 공시가격마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이중 부담이 생긴 셈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붙은 공시가격 상담 광고문.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 보유세와 직결되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차등 구간을 9억원과 15억, 30억원으로 나눈 근거가 불분명하고, 공동주택만 현실화율을 높이는 점 등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한웅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주택 유형별로 현실화율을 통일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 공동주택만 현실화율을 높일 경우 조세 형평에 어긋날 수 있다"면서 "법률에 의하지 않고 현실화율을 차등하는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률 유보의 원칙이란 행정행위에는 반드시 법률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다. 그는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조세 처분에는 법률유보원칙이 더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래세는 그대로 두면서 보유세만 강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거래세를 내리고 보유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조세개혁을 하겠다는 원칙을 수차례 밝혔지만 실제로는 거래세는 그대로 둔 채 보유세를 높이는 정책만 쓰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위원은 "큰 틀에서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고가 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을 가중해 실수요자들만 집을 보유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양도소득세 부담을 더 줄여 퇴로를 확보해 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을 규제하는 데 공시제도를 동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제도의 목적은 시장 질서 유지나 과세 기준 등 다양하게 볼 수 있지만, 이번 개편은 서울 강남 같은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한 수단에 공시제도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쟁 같은 비상시국도 아닌데 제도 개편의 장기적인 영향이나 부작용 등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썼기 때문에 앞으로 부동산시장에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