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인공지능(AI) 국가 전략'을 내놨다. AI 기술 개발과 투자를 통해 현재 10위인 국가 디지털 경쟁력 순위를 2030년 3위로, 현재 30위인 삶의 질 순위를 10위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또 이를 통해 2030년까지 455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뚜렷한 방향성도 없이 각 부처 정책을 나열한 백화점식 전략" "재탕·삼탕 전략" "장밋빛 로드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략 수립을 총괄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지난 6월부터 여러 부처와 학계, 산업계의 고견을 수렴해 이번 전략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한 AI 연구자는 "6개월 동안 짠 전략이라고 보기엔 허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2030년 AI 반도체 세계 1위"

과기정통부는 ▲AI 생태계 구축 ▲AI 인재 양성 ▲사람 중심 AI 구현이라는 3대 분야에 9대 전략·100대 실행 과제를 AI 국가 전략으로 내놨다. 100대 추진 과제를 통해 2030년까지 AI 전문 인재를 연간 1만명 육성하고, 2029년까지 1조96억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에 기반을 둔 AI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신설해 AI 인재를 연 500명 키워내고, 대학별 결손 인원을 활용한 AI 학과 신·증설, AI 관련 학과 교수의 기업 겸직을 허용하기로 했다. 또 군 장병·공무원을 대상으로 AI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등 전 국민 AI 교육 시스템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AI에 대해서는 선(先) 허용·후(後) 규제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체계'를 만들어 내년부터 적용한다. 공공 데이터를 전면 개방해 민간 기업·창업자가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 스타트업 집중 양성, AI 시대를 위한 법제정비단 출범도 이번 국가 전략에 포함됐다. 혁신 성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왔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재(再)정비해 범국가 AI 위원회로 만들겠다고도 밝혔다. 이를 통해 AI 국가 전략이 제대로 추진되는지 관리·감독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략회의·대국민 보고회의로 추진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일관성 없고, 구체성 부족 비판

하지만 AI 국가 전략을 한 꺼풀 벗겨보면, 각 부처에서 이미 추진한 정책을 한데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교 교육과정을 소프트웨어(SW)·AI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것은 현재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된 코딩(소프트웨어 개발) 의무 교육과 유사하다. 2030년까지 AI 기반 스마트공장을 2000개 보급하겠다는 것은 2017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공장 확산 사업과 겹친다. 신약 개발 AI 플랫폼 구축은 이미 보건복지부의 내년 예산안에 포함됐고, 자율주행 대중교통 기술 개발도 현재 세종시 등에서 기업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작년 한 해 연구·개발(R&D)비만 20조원이 넘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 해 1000억원 남짓 10년간 1조원을 투자해 세계 1위 AI 반도체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차세대 AI 기술을 5개 이상 선점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AI 기술을 선점하겠다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김창경 한양대 교수(과학기술정책)는 "100개 추진 과제를 내놓은 것부터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라며 "제대로 된 AI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초고성능 장비를 확보하고, 글로벌 석학을 영입해 AI 인재를 양성하는 식의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이번 AI 국가 전략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 게 아니라 정부의 AI 정책 방향성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며 "앞으로 민간, 학계 등의 목소리를 담아 구체적 정책을 계속 내놓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