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은 잇달은 정책 실패로 궁지에 몰린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18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발언한 후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책임론’마저 대두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구간별로 LTV를 차등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이고 ▲서울 13개 구(區) 전 지역, 서울 5개 구 37개동, 경기 과천·광명·하남 3개시 13개동을 분양가 상한제 대상으로 추가 지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2월 1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 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날 발표한 대책은 2017년 6·19대책, 8·2부동산 대책, 지난해 9·13대책에 이어 ‘정부 합동 종합 대책’ 형태로 발표된 네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지난달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지정 등 개별·후속 조치까지 합치면 18번째 대책이다.

정부는 지난달 현정부 중간 평가에서 "8·2대책, 9·13대책 등으로 국지적 과열에 대응한 결과,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서울 주택 가격이 2013년 이후 최장 기록인 32주 연속 하락하는 등 전국 주택가격은 예년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 중"이라며 부동산 대책에 대해 자평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값은 24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대책이 좀처럼 약효를 발휘하지 못 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핀셋 규제’ 한다더니...광범위한 분상제 지역 지정 깜짝 발표

이날 대책은 예고 없이 이뤄진 깜짝 발표였다. 서울 13개구 전체 272개동, 서울 5개구 37개동, 경기 3개시 13개동 등 총 322개 동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11월 6일 국토부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지정한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수는 27개 동이었는데, 대폭 늘린 것이다. 대책 발표 시기 또한 직전 발표 이후 불과 40일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홍 부총리는 국토부 주정심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핀셋 규제’의 취지와 기대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측면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려했다"면서 "동 단위 ‘핀셋 규제’는 조율의 결과"라고 했다. 핀셋 규제는 광범위한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지정 대신, 꼭 필요한 부분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집 값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기대와 달리 대전 유성구, 경기도 과천, 부산 해운대·수영구 등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 아닌 곳의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 값은 24주 연속 상승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 지정 발표 당시 "동(洞) 단위 ‘핀셋 규제’로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했다"고 했지만, 불과 한달만에 입장을 틀어 ‘서울 13개구 전면 지정’ 등 필요한 카드를 모두 꺼내들었다. 부작용이 발생한 정책을 수정하기 보다 그 정책을 더 넓은 범위에, 더 전폭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 "오락가락 정부가 시장 교란"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대책에 포함된 임대 사업자 혜택 축소다. 이번 대책에는 임대등록 시 취득세·재산세 감면 혜택을 축소하고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7년 8·2 대책에서 정부가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등록시키고자 세제 혜택을 제시했는데 이를 점차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전문가는 "(정부 정책을)계속 보다 보면 욕을 하게 된다"면서 "단기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이를 공급 부족으로 인식하게 되면 신축 쏠림 현상이 강화될 수 있다"면서 "지금도 분양가 상한제를 공급 부족의 원인이라고 시장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런 식이면 시장은 정책과 계속 거꾸로 갈 것"이라고 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 값이 오르는 주된 이유는 분양가 상한제"라면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확대한다는 것은 이런 상승 압력을 더 키우는 것인데,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도 왜곡, 세제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작부터 왜곡된 정책으로 시작하니 점점 더 일이 커지는 것"이라면서 "왜곡을 왜곡으로 막으려고 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지점장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해도 ‘총선 지나면 바뀌겠지’하면서 영향을 안 받게 되고, 그러다보니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은상 부동산써브 리서치팀장은 "대책이 너무 자주 나오다보니 논란이 있고, 정부가 ‘서울 집값이 떨어졌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무슨 말이냐, 얼마나 많이 올랐는데?’ 싶을 정도로 느끼는 바가 달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라면서 "정부 기관이 발표하는 숫자를 믿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 숫자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시장에서 신뢰할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