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오윤희 특파원

뉴욕 백화점들의 폐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뉴요커들의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던 명품 백화점 '바니스'가 파산 신청에 들어갔다. 바니스에 앞서 1826년 창립한 백화점 로드 앤 테일러, 독특한 디자인을 취급하던 백화점 헨리 벤델도 뉴욕 '쇼핑의 중심가'인 5번가와 매디슨 애비뉴에서 문을 닫았다.

오프라인 매장의 부진은 비단 뉴욕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시장 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미국 리테일 부동산 공실률은 작년 1분기 13%에서 올해 1분기 13.6%로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 3분기에는 13.9%로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불황을 겪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과 대조적으로 유독 눈에 띄게 급성장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물류 창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미국 물류 창고 매출은 17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기준 물류 창고 평균 가격은 1제곱피트(약 0.03평)당 414달러로, 2016년 같은 기간 평균 가격 281달러의 약 1.5배가 됐다. 특히 뉴욕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스 등의 물류 창고 가격이 크게 뛰어 이곳에선 100만달러 미만으로는 물류 창고 구매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WSJ는 전했다. 한편 LA타임스는 "캘리포니아 폰태너에선 최근 몇 년간 약 45만평의 부지에 54개 물류 창고 건설이 이뤄지고 있어 주민들이 공사 소음 등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기업 JLL의 크레이그 마이어 미국 산업부문 사장은 자체 보고서에서 "이제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고층 오피스 빌딩과 비교당하며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창고와 물류센터가 최근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일 배송이 부추긴 물류 창고 붐

전통 상가의 공실률 상승과 물류 창고 분야의 약진은 모두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스태티스타는 2021년까지 전 세계 온라인 시장이 4조9000억달러로, 2014년(1조3000억달러)에 비해 265%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가파르게 성장 곡선을 보이고 있는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상점의 몰락을 부추기는 동시에 물류 창고의 부상(浮上)을 견인한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물류 창고 컨베이어벨트 위로 택배 상자들이 옮겨지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은 3분기에만 물류 창고 확보에 8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특히 아마존 등 거대 온라인 쇼핑몰의 '당일 배송' 전략이 물류 창고 붐의 도화선이 됐다. 아마존은 지난 4월부터 우수 회원인 '프라임 고객'에게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에 따르면, 올해 당일 배송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주문 품목은 수십억 개에 이른다. 이를 위해 아마존 측은 3분기에만 당일 배송 서비스를 위한 물류 창고 확보에 8억달러를 쏟아 부은 데 이어 4분기에도 3분기의 두 배 수준인 15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형 유통 업체 월마트도 올해 가을부터 연회비 98달러를 내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당일 배송 구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AP통신은 "월마트가 전국 200개 지역 1400여개 매장에서 올해 가을부터 당일 배송 구독 서비스를 실시하고, 연말까지는 전체 매장의 절반가량인 1600개 매장으로 당일 배송 구독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6월엔 중저가 유통 업체 타깃도 2년 전 인수한 배달 스타트업 업체 십트를 이용해 수천 개의 물품에 대한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일 배송 전쟁 참여 업체가 늘어남에 따라 향후 물류 창고 시장은 한동안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업용 부동산 정보 업체 JLL은 자체 보고서에서 "현재 전체 물류비에서 운송, 인건비, 재고 관리비 등이 차지하는 비용은 80%가 넘는 반면, 렌트비는 4.3%에 불과하다"면서, "대도시 인근에 물류 창고를 지어 운송비를 줄이는 편이 전체 비용 절감에 효과적이다"라고 분석했다.

◇"물류 창고를 잡는 자, 이커머스 시장을 평정한다"

물류 창고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면서 미국 거대 기업들 사이에서도 물류 창고 투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사모펀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블랙스톤이 싱가포르 최대 물류 기업 GLP(Gloal Logistic Properties)로부터 미국 창고 부문을 187억달러에 매입했다. 블랙스톤은 이를 통해 미 전역에 16.7㎢에 달하는 GLP의 물류 창고를 인수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는 사상 최대 규모 민간 부동산 거래이며, 블랙스톤이 전자 상거래 확대에 대비해 물류 창고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한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지난 10월 거대 물류 회사 프로로지스는 물류 창고 리츠(REITs: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추얼 펀드)인 리버티 프로퍼티 트러스트를 97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프로로지스가 지난 18개월 사이 세 번째로 인수한 기업이다. 프로로지스는 산업용 부동산 업체인 DCT 인더스트리얼 트러스트와 인더스트리얼 프로퍼티 트러스트도 인수한 바 있다. 프로로지스의 하미드 알 모 가담 회장은 리버티 프로퍼티 트러스트 인수 발표 후 "이번 인수로 리버티 프로퍼티 트러스트가 보유한 물류 자산이 프로로지스의 사업 확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주력하는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 두 기업의 행보는 물류 창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을 깐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두 개 기업은 올해에만 총 380억달러어치의 물류 창고를 인수해 물류 창고 확보 전쟁의 선두에 나란히 섰다"면서 "온라인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물류 창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관련 업체들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온라인 시장의 잠재적인 성장 외에도 최근 미국 기업 투자가 증가하고 민간 소비가 살아나면서 물류 창고의 가치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에 쓰이는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 전자 상거래를 통한 소비가 더욱 커져 물류 창고를 찾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크 고든 글로벌 리서치 전략 책임자는 "물류 창고 산업은 정부의 세제 개혁 같은 정책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애널리스트 린지 더치는 "소비자가 많은 대도시 근교 입지가 좋은 곳에 물류 창고 건설 수요가 특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